40에도 여전히 유연한 이유
나의 20대는 늘 일상에 ‘운동’이라는 것이 있었다. 무슨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에서 한 것은 아니었다. (늘 슬림하긴 했으니까) 어떻게 보면 자기계발의 한 수단으로 그렇게 몸을 다스리는 습관들을 계속 유지했던 것 같다.
취미로 발레를 꾸준히 하다가, 대학에서 부전공을 하기도 했다. (tmi지만, 나는 석사과정을 한예종 무용원에서 했다. 나름 특이한 삶의 이력이다.) 이후 한국무용도 조금 배웠고, 가끔씩 요가나 수영 등을 하기도 했다. 원래도 운동신경은 좋았기 때문에 하이클래스만큼은 아니더라도 무엇이든지 곧잘 했다.
그러다 30대에 들어서면서 운동과 서서히 멀어진 것 같다.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정도, 학교를 걸어가는 정도의 움직임만이 있었던 것 같다. 중간중간 요가를 하기도 했고, 헬스도 했지만 20대의 그것처럼 꾸준하고 진지하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어느날 내 왼쪽발이 살짝 뒤틀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발 뒤축의 닳음이 확연히 달랐던 것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골반이 뒤틀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장시간의 박사과정은 목 근육을 뻣뻣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겐 회복의 시간을 가질 새도 없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게 됐다. 물론 몸이 너무 안 좋다 싶을 때는 나만의 어떤 노력으로 간간히 운동을 했고, 그때마다 조금씩 회복하는 식으로 몸을 돌보았다.
그나마 그런 식으로 어떻게든 간간히 신체를 단련했기 때문일까. 나이 40이 되었어도 내가 어느 정도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최근 깨달았다.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하는 요가와 필라테스 수업을 다른 어떤 엄마들보다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던 것. “이 동작 하고 나면 다음날 아플 거예요.”라고 한 선생님의 말씀이 무색하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인지, 요가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다. 젊었을 때에는 너무 지루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그땐 내가 너무 산만하고 마음이 조급해서 그랬던 것 같다. 요가는, 그러니까 어떤 영적인 부분을 다루는 움직임이라는 생각이다. 요새 특히 회자되는 “명상”이라든지, “마음 챙김”을 실현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쉬탕가나 빈야사 등의 나름 상당한 근력을 요구하는 스타일의 요가를 하다 보면, 나 역시 다음날 이곳저곳 근육통이 생길 정도로 상당히 운동이 된다. 그동안 쓰지 않았던 근육들을 많이 썼다는 말이다. 이렇게 요가를 하다 보니 가끔 생기던 등의 통증이 사라지고, 아침에 일어날 때 더운 개운해졌다.
젊을 때의 그 정력적인 몸으론 결코 돌아갈 순 없겠지만, 그나마 그 시절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은 덕분에 지금도 여전히 자세나 근력이 금방 좋아지는 것 같다. (젊은 사람들아, 그러니까 제발 운동해라!) 사실 30대의 나는 지난 시절 내가 너무 운동에 나의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낭비한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그 체력으로 박사과정도 마쳤고,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라는 긴 터널을 그럭저럭 무난하게 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 다시 20대처럼 꾸준히 몸을 단련시킬 작정이다. 일단 요가를 적어도 10년은 꾸준히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장착하고, 발레에서 배웠던 각종 소근육 쓰는 동작들도 집에서도 혼자 복기해 볼 작정이다. 요가를 한 10년 하면 두 손만으로 물구나무도 서고, 온몸의 체중을 버티게 될 수도 있을까? (유튭에서 보면 거의 ‘태양의 서커서’ 수준으로 몸을 놀리는 요기들이 많다.)
생각해 보면, 나의 친정아빠가 이렇게 꾸준히 운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아빠는 검도 유단자이다. 타고난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노력으로 이를 극복했고 그 덕분에 오래도록 건강을 유지하셨다. 물론 그런 아빠도 70이 넘으니 일어나실 때마다 여기저기 아프다며 곡소리를 내시곤 하지만… 무튼 아빠의 그런 근성을 나는 물려받은 게 아닐까?
나는 운동을 좋아하고, 타고난 감각도 있는 편이지만 어떤 영적인 부분들에 대한 감수성도 조금 있는 편인 것 같다. 그러니까 ‘내면의 평안(inner peace)’이라든지, 어떤 ‘큰 존재와의 합일’, 유물론자의 그것과는 확실히 반대되는 그런 스피리츄얼한 것을 믿는 게 있다고 본다. 그래서 요가에 끌리게 된 것 같고. (물론 그렇다고 “도를 아십니까?”는 결코 아니다.)
30대에 잃어버리고, 흩어졌던 나의 체력이나 마음의 평안을 다시 되찾으려 한다. 그나마 내가 남들보다 좀 더 유리한 것은 20대에 다소 유난을 떨었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나에게 ‘정말 수고했구나!’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