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그게 뭐라고
한창 더울 때 시작했던 러닝을 좀 더 진지하게 해 보고자 9월에는 아파트 내 헬스장에 등록했다. 그리고 오늘까지 단 한 번도 운동을 하지 않은 날이 없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시간이 있고, 아프지 않고, 할 만하니까. 분명 어떤 강박까지는 아니다.
그런데 자꾸 뛰다 보니 체력이 좋아진다. 러너스 하이도 경험해 본 것 같고. 그러니까 자꾸 자질구레한 정보들에 내가 휘둘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마라톤 출전. ‘저런 사람들도 다 하는데, 나라고 못하겠어?’ 하는 오만한 마음이 자꾸 커져가는 것이었다.
‘10킬로는 왠지 좀 싱거울 것 같고, 조금 노력하면 하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왔다 갔다 한다. 이게 바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자만이다. 꼭 이럴 때 부상을 당한다고 한다. 그걸 아주 잘 알고 있고, 애초에 이런 건 하지 말자고 마음먹었을 때가 언젠데 어리석게도 나는 망상에 빠져있는 것이다.
사실 오른쪽 두 번째 발톱이 하나 빠졌다. 태어나서 발톱이 빠져본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어쨌거나 러닝으로 인한 후유증이다. 문제는 이번엔 발톱 하나지만, 욕심이 더 심해지면 다음번엔 그게 발목이나 무릎, 척추가 될 수도 있다. 나라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집착을 하나 생각해 보니, 결국 남에게 좀 뽐내고 싶다는 유치한 심리도 있는 것 같다. ’저도 하프 몇 분 기록으로 뛰었습니다. ‘ 하며, 쓱 한 번 웃고 싶어서. 근데 그게 뭐라고…?! 참 이럴 때 보면 인간이란 결국 지 잘난 맛에 산다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나는 러닝을 다시 시작하면서 이 운동을 좀 오래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일단 원래 오래 달리기를 잘했고, 또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달릴 때 생각이 없어지는 것이 좋다. 달리고 난 후의 약간의 피로함과 개운함도 좋다. 그래서 할 수 있다면, 어쩌면 죽을 때까지 이 운동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무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괜히 기록과 메달이라는 트로피에 눈이 멀어 한 번 반짝 도파민을 맥시멈으로 끌어내고, 그에 정신이 팔린다면 언젠가는 심한 번아웃도 오지 않을까? 그건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다. 그냥 꾸준히 취미로, 오늘 달리고 내일 일어나도 몸이 아프지 않을 정도로만 하는 것. 그런 일만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물론 이렇게 마음을 다독여도 나는 예의 그 어리석음에 빠져 마라톤 출전을 기어코 하고 말지도 모른다. 그건 나도 알 수 없는 미래. ㅎㅎ 그래도 일단은 좀 자중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 초심을 기억해내본다. 그리고 빠진 발톱을 여러 번 쓰다듬는다.
내가 운동을 매일 하는 것은, 다이어트 때문도, 몸짱이 되려는 것도 아니다. 결국 운동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내가 지키는 단 하나의 룰이 있는데, 그것은 1시간을 절대 넘기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매일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좋아한다고 남용하지 않는 것. 그게 오래 좋아할 수 있는 비결이다.
하여간 그렇게 매일매일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니, 좀 과장 보태서 말하면 몸 전체가 새로 바뀐 기분이다. 점점 낡아가던 장비들이 새로운 도구들로 교체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이 정도면 더 바랄 것이 없는 것이 아닌가. 누가 알아주지 않으면 어때. 내가 내 안의 흡족한 행복을 가장 잘 아는데.
모르긴 몰라도 우리 아들들은 엄마의 이런 남다른 승부욕보다 훠어어얼씬 강한 호전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어디 다리 하나, 팔 하나가 부러질 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때 “엄마도 그랬잖아!”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좀 조신히 운동해야겠다. 내가 이래서 아들만 둘을 낳은 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