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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사 Apr 17. 2024

역설적이게도 힘들 때가 제일 예쁘다

육아의 아이러니

요즘 둘째가 너무 이쁘다.

갑자기 와락 안아서 “이뻐 죽겠어!”라고 할 정도로 예쁘다. (둘째는 이 엄마 왜 이러냐는 듯 싫어라 한다.) 그런데 지금보다 더 예뻤을 때가 마의 육아 구간이라 하는 신생아 시절부터 100일 남짓했을 때다.


이 녀석이 진짜 객관적으로 이뻐서 그런지, 아니면 내 눈에만 이뻐 보이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확실히 첫째도 이 순간들이 젤 이쁘고 소중했다. 그 무렵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 마치 첫사랑을 보듯 그들에게 쏙 빠져든다. 작은 손과 발, 옹알이, 갓난아기의 무력함, 그 모든 요소들이 너무 예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시기가 사실 가장 힘든 시기라는 것… 밤낮없이 아가에게 젖을 먹여야 하고, 제대로 트림도 못하는, 엄마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무력한 존재이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그 핏덩이 같은 존재의 생명까지 지켜줘야 하는 엄마의 심신은 정말로 고단하다.


아마도 내가 이 시기를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그 이유만이 나의 전적인 희생을 납득시킬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너무 예뻐 모든 것을 다 견딜 수 있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켜야만 하기 때문이라는 것. (근데 진짜 객관적으로도 이쁜 것도 맞는 것 같은데…)


둘째가 그럼 요즘 왜 이렇게 이쁜 걸까. 지금의 예쁨은 일종의 아쉬움에 대한 감정인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역시 힘들긴 힘들다. 그런데 그래서 이쁘기보다는, 어쩌면 이 힘든 시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 나의 아기는 점점 자라 아기의 무력한 모습을 잃게 된다는 것이 이상하게도 참 아까운 것이다. 셋째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둘째의 아가아가함이 더없이 소중하고 아쉽고 그렇다.


아기가 기저귀를 떼고, 말을 더 잘하고,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된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자연의 당연스러운 섭리인데, 내 품 안의 아가였을 때의 시절이 나는 언제나 그리울 것 같다. 젖병으로 수유할 때, 기저귀를 갈아줄 때, 업어서 재울 때, 그때 나와 눈 마주치고, 웃고, 울고, 옹알이했던 예쁜 우리 아가~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확실히 엄마의 몸은 좀 덜 고단해진다. 하지만 좀 더 피곤하더라도 우리 예쁜 아가가 내 곁에 항상 있었던 그때가 진짜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벌써 작년 이맘때의 두 녀석들이 그립다.


물론 지금 순간순간의 커나감도 너무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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