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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존책방 Jan 27. 2022

공감 능력 없는 남편의 고민

'부정적인 감정'이 아닌 내가 '원하는 것' 선택하기

아내가 화가 나서 말을 안 한다.


인생 최대의 위기다. 차라리 욕이라도 해주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세상에서 가장 공포에 휩싸이는 순간은 아내가 입을 닫을 때다. 내가 잘못한 것을 분명히 알겠는데 어떻게 화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머릿 속으로는 넉넉한 남편이 되어 달래주고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가고 있는데, 현실은 조마조마한 찌질한 남편이다. 오히려 지가 더 힘들어한다. 아내가 힘들면 나는 어린아이가 된다. 무슨 말을 건넸을 때 날카로운 말로 돌아올까 봐 두려워서 입이 안떨어진다. 내 속은 점점 좁아다. 눈치만 보다가 등 돌린 아내를 향해 불쌍한 톤으로 어렵게 한 마디 꺼낸다.


여보... 화났어?


아내는 더 뚜껑이 열린다. 도대체 어떻게 풀어가야할지 모르는 이 상황과 나 자신이 힘들다. 솔직히 아내가 이해되지 않아서 그런게 아닐까? '왜 항상 아내는 만족하지 못하고 요구만 하는 걸까? 아내를 만족시키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내가 느끼기에 아내는 평소에 말하지 않다가 갑자기 화가 폭발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생각은 여기까지 머물렀다. 사실 아내는 갑자기 화낸 것이 아니다. 내가 그동안 아내의 마음에 관심이 없어서 참고 있는지 눈치 채지 못하고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아내와 다투면 나는 5살 아이가 된다. 남편으로 아내를 대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아이가 어떻게 어른의 기분을 풀어줄까 걱정하는 모습이다. '아 어딘가 익숙하다.' 엄마와 나는 어려서부터 이렇게 지냈다. 엄마와 풀지 못한 감정의 문제를 아내와 다시 씨름하고 있었다. 학창 시절 늘 나를 깨우는 알람 소리는 아빠와 엄마가 다투는 소리였다. 왜 다 큰 어른들이 아이처럼 저렇게 양보하지 못하고 싸울까 싶었다. 엄마의 감정은 늘 예측불가였다. 엄마가 기분 좋을 때를 잘 살펴서 용돈을 받아내야 했다. 역기능 가정에서는 가족체계의 역할이 뒤바뀐다. 보통 자녀가 가족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부모가 하지 못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나는 우리 집에서 부모를 돌보는 부모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결혼 전에는 잘 몰랐는데 결혼해 보니 문제가 줄줄이 터졌다. 나는 내 감정과 욕구를 표현하지 않고 사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었다. 감정을 표현했을 때 늘 아팠기 때문에 감정의 스위치를 끄고 살았다. 감정은 내게 두려움의 영역이었다. 가면을 쓰고 괜찮은 척을 했고, 내가 괜찮은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 없어 '일'로 증명하려 애썼다. 거짓 자아를 가지고 살아왔으니 아내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일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아내는 신혼 초부터 나의 이해되지 않는 감정상태와 표현 때문에 어려워했다. 아내가 어떤 말을 하면 왜곡해서 듣고, 공격으로 반응했다. 아내와 싸우면 버림받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고, 몸의 긴장과 함께 마음의 여유는 사라져버렸다. 그럼에도 아내와 화해는 필요했다. 아내의 속상한 마음을 달래려고? 아니 내 마음 편하자고. 


감정에 휩싸일 때마다 "감정과 원하는 것 구분하기"


내가 원하는 것은 아내의 마음을 풀어주는 것이다. 아내와 싸울 당시 내 감정은 분노하고 있지만 속은 버림받을 것 같은 두려움과 불안이 공존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짙은 안개 속에서 손짓을 하며 더듬더듬 길을 찾아가는 것과 같다. 나를 그동안 지배했던 감정은 수치심이다. 수치심은 나의 이성을 마비시킬 만큼 내 존재를 부정하는 고통스러운 감정이다. 그러나 이제 나 때문에 아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 큰 고통이 되었다. 이것이 치유를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던 나에게 치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생존이었다.

"내면을 바라보는 것을 회피하며 자신을 보호하려 하거나 혹은 기꺼이 자신을 알아가고 책임을 지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하는 것은 성인 자아다." <내면 아이의 상처 치유하기> 마거릿 폴, p.55




치유는 자신의 감정을 보호하려는 태도에서 책임지는 태도로 바뀌게 한다. 내가 치유를 선택해야 치유가 일어난다. 감정은 선택의 영역이다. 이제는 부정적인 감정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횟수가 많아지고 있다. 우리 부부의 관계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 시점은 내 마음을 보호하려고 회피하지 않고 내 감정에 책임지기로 결정한 때 부터다. 아무리 감정이 고통스러워 이성을 마비시켜도 감정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감정은 누군가 내게 일으킨 것이 아니라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이다. 내 감정에 책임지면 변화는 반드시 일어난다. 나같이 공감 능력 없는 남편도 느리지만 변하긴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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