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에게 부모 역할을 요구하지 마세요

귀향 증후군

가끔 아내가 7살 아이같을 때가 있다. 천진난만하고 장난기 가득한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내가 강도가 센 장난을 칠 때는 기분이 좋지 않아 바로 정색하며 중단시킨다. 아내의 장난을 싫은 척하지만 입은 웃고 있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는게 맞는데 막상 싸우면 왜 감정 조절이 어려울까? 우리 부부가 싸울 때를 보면 아이들끼리 싸우는 것 같다. 서로 좋아서 결혼했는데 왜 우리의 관계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지 정말 박 터지게 많이도 싸웠다. 결혼 전 아내와 연애할 때 문득 스친 강렬한 생각이 있다.

'이 사람이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는 9개월 연애하고 결혼했다. 서로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 채 알 수 없는 기대감과 이상을 품고 결혼을 결심했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야말로 내 안에 채우지 못했던 욕구가 풀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환상을 기대했지만 환상일 뿐. 결혼 후 숨겨왔던 서로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의 욕구를 채워주기보다 자기 목소리만 주장하기 바빴다. 아무래도 결혼 전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다.

상처받은 내면 아이는 배우자를 자신의 원부모처럼 여긴다고 한다. 나는 아내라는 존재를 아내 이상으로 생각했다. 어머니로서 줄 수 있는 안정감을 아내에게 요구했고, 아내는 내게 장인어른과 풀지 못한 숙제를 풀려고 자신을 인정해달라고 분노로 표현했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내가 마치 모든 불행의 원인을 제공한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내는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해결할 줄 몰라서 내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그동안 반복되는 부부 싸움을 멈추게 할 힌트를 찾았다. 문제의 핵심은 '내면아이'였고 '귀향 증후군'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귀향 증후군: 어린 시절에 경험한 가족의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재현하려는 현상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배우자에게 요구하다

'이 사람이면 되겠다'라고 생각한 이유는 무의식 중에 아내가 내 새로운 부모가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서로 배우자로부터 부모와 풀지 못한 숙제를 풀려고 했다. 부부 싸움을 하고나서 화가 난 아내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버림받을 것 같았던 이유는 아내를 엄마처럼 대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배우자가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완전히 잘못된 믿음이다. 억압된 감정이 해결되지 않은 사람은 자신 안에서 행복감을 찾지 못한다. 역기능 가정의 경우 자녀가 부모에게 맞추느라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부정당하게 된다. 감정을 결정하는 것은 항상 부모이기 때문에 고통이나 행복도 외부에서 주어진다는 잘못된 믿음이 생기게 된다.

우리 부부는 결혼해서 상대방을 통해 행복을 얻으려고만 했지, 자신의 내면을 채울 방법을 찾거나 감정에 스스로 책임지지는 못했다. 서로에게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탓하며 아이처럼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 관계는 마치 외줄 타기처럼 아슬아슬할 수 밖에 없었다. 부모에게 받아야할 사랑의 부재는 서로 도와줄 부분이지, 배우자가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각자의 부모에게 받고 싶었던 욕구가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 위로하며 도와야할 문제다.

우리 부부의 결혼생활 6년 차 목표는 경제적 자유보다 ‘친밀함’이다. 관계에서 친밀함을 형성하려면 먼저 각자의 자아가 건강해야 한다. 거짓 자아로 자기를 부정하고 사는데 상대방이 어떻게 관계의 친밀감을 느낄까? 부모에게 받지 못한 것을 배우자로부터 해결받으려는 이상 부부의 친밀함은 불가능하다. 자신 스스로를 돌봐야 하며 배우자의 좌절된 욕구와 감정을 서로 감싸 안아줘야 한다. 서로의 내면 아이를 재양육하며 각자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도록 도울 때 친밀함은 조금씩 두터워질 것이다.

---

[생존책방 셀프치유 가이드]

1. 부모에게 좌절되었던 욕구와 감정을 글로 써보거나 대화를 나눈다.
2. 부모에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적어본다.
3. 듣고싶었던 말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써 붙여서 혼자 읽거나 서로에게 자주 표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