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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존책방 Mar 24. 2022

아내와 싸운 후, 남편이 하는 생각

아내는 왜 화가 났을까?

아내와 또 싸웠다.


"여보 같이 있기 정말 불편해. 늘 자기감정대로만 행동하고,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이야. 가족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항상 자기가 먼저야." 아내에게 같은 말을 다시 들었다. 한 마디로 아직도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다. 전 같면 이렇게 반응했다. "내가 그 정도까지 잘못한 건 아니잖아.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한 것도 있는데!" 이제는 입을 꾹 다무는 연습을 한다. 감정이 올라오는 대로 말하면 항상 후회했었다. 무엇보다 화해하는 일은 더 어렵다. 아내에게 말을 걸기까지 억울한 마음이 든다. 아내도 잘못했다는 생각 든다. 이 생각을 말로 내뱉으면 큰일난다. 마치 '아내는 잘못이 없다'는 전제를 못 박아놓고 다시 생각을 고쳐본다. 이렇게 해야 겨우 나를 돌아볼 수 있다. 아내가 왜 화가났는지 내 잘못은 무엇인지 정리가 되면 죄책감이 밀려온다. 


'내가 정말 변할 수 있을까?'


치유된 줄 알았는데. 어느 정도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이성적으로 치유 지식을 아무리 읽고 이해해도 내 속은 변하지 않았다. 화해하는 과정에서 아내 입에서 나오는 내 모습을 듣고있자면, 정말이지 내 생각 회로를 뜯어서 다시 새것으로 바꿔버리고 싶다. 치유 과정에서 가장 나를 힘들게 만드는 생각은 '다시 또 제자리' 였다.


치유된 줄 알았는데, 다시 또 제자리


5년 전,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치유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생존을 위해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하나씩 개념을 정리했다. 독서량이 늘자 글로 표현하고 싶었고 글을 쓰며 감정의 뿌리를 찾아가고 있다. 지금은 내가 느끼는 감정과 어렸을 때의 기억을 연결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내면아이 치유 독서모임을 열어 내가 정리한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 부부싸움도 이틀에 한 번이었다면 이제는 열흘에 한 번이다. 아직도 싸운다니.


공감 능력을 돈 주고 살 수 있다면


공감 능력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만약 판매된다면 아무리 비싸도 할부로 살 것이다. 공감 능력 없는 것이 이렇게 불편할 줄 몰랐다. 결혼하면 당연히 행복한 가정을 만들 줄 알았는데, 나에겐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아내 분명 한국어로 말하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된다. 그래도 아내는 나를 격려해준다. 이 정도 인식하게 된 것도 기적이란다. 조금은 자신의 말을 들어주려고 하는 것 같다고 후한 평가를 해준다. 치유는 얼음이 따뜻한 햇빛으로 조금씩 녹는 것처럼 장기 레이스다. 어려서부터 늘 감정은 날 아프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무감정을 선택해왔었다. 무감각해져 꽁꽁 얼어붙은 마음이 녹자 잃어버렸던 내 감정과 욕구를 돌아보며 나 자신을 선명하게 그려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발목을 잡는 생각은 '내가 정말 변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다.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변화를 의심하는 것이다. 내가 아내 한 사람을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도 나 자신을 수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결혼생활을 아무리 잘 하려고 노력해도 무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다. 의식과 무의식이 같이 변해야 한다. 무의식을 변화시키려면 '내면 아이'를 들여다봐야 한다. 어릴 때부터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슬픔을 지금 슬퍼해줘야 한다. 자신을 비하하고 있는 내면아이에게 "괜찮아! 걱정하지 마!"라고 안심시켜주는 따뜻한 말이 필요하다. 치유의 최종 목적지는 자기 사랑을 넘어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때까지다. 남편과 아빠가 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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