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존책방 Feb 03. 2022

엄마, 미안하다고 말해줘 제발!

용서는 포기의 과정이다.

사랑하는 딸에게 또 화를 내고 말았다. '그만해야지 그만해야지' 다짐해도 잠시 뿐이다. 나는 고작 6살 된 딸에게 화내는 유치한 아빠다. 딸을 눈엣가시처럼 대할 때 내 자신에게 실망스럽다. 내 안에 있는 분노를 해결하지 않으면 결코 변화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노의 뿌리를 어떻게 뽑을 수 있을지 '내면 아이' 책을 읽던 중 한 문장이 덜컥 다가왔다.

 

"당신의 상처받은 내면 아이를 회복하는 과정은 용서의 과정이다."
'존 브래드 쇼', <상처받은 내면 아이 치유>, p.256


내면 아이를 회복하는 과정이 곧 부모에 대한 '용서'라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용서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할 수는 있을까? 잘못한 것은 부모인데 왜 자녀인 내가 먼저 용서를 고민해야 하는가. 벌써 머리가 아프다. 내가 용서한다고 해서 부모가 변하는 것도 아닌데.


분노는 똑같은 감정을 되풀이시키는 특징이 있다. 그동안 너무 고통스러워서 덮어두었던 슬픔에 닿지 못하도록 분노로 회피하게 만든다. 부모를 미워하는 데 에너지를 쓰는 한 분노의 감정에 얽매여 있다는 뜻이다. 결혼해서 몸은 따로 살지만 여전히 엄마와 정서가 분리되지 않았다. 내 안에 원망이 남아 있는 이유는 여전히 부모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내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면 나아질까? 내 말을 이해하지도 못할 텐데. 들으려고도 않을 텐데 무슨 소용이나 있을까? 갑자기 그래도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전화를 집어 들어 엄마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일방적으로 말했다.


"엄마! 엄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용서가 돼? 잘 안되지? 나도 똑같아. 엄마가 나에게 신경질적으로 말하고 무관심하고 공감해주지 않았던 것처럼 내 애들한테 똑같이 하게 돼.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내가 엄마랑 너무 똑같아서 화가 나. 내 안에 분노가 해결되지 않아. 엄마를 용서해야 내 마음이 풀어질 것 같은데 못하겠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엄마가 그냥 미안하다고 해주면 좋겠어. 미안하다고 말해줘!"


"..."


"왜 말이 없어? 자존심 상해? 그 말이 그렇게 어려운 거야?"


겨우겨우 꺼낸 엄마의 첫마디.

글쎄 말이 잘 안 나오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왜 굳이 전화해서 또 좌절을 하고있는 걸까? 괜히 전화했다. '아 아직도 엄마를 그대로 보지 않고 엄마의 모습을 기대하며 환상을 가지고 있구나. 엄마도 수치심이 건드려졌겠지.' 이렇게 엄마를 향한 원망하는 마음이 있으면 종종 전화했었다. 정말 안부가 궁금해서 한 것은 아다. 엄마를 돌봐야 하는 의무감으로, 죄책감을 덜기 위해 했었다. 용서는 감정적인 기적이 일어나는 어떤 이벤트가 아니었다. 부모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부모님을 객관적인 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내 마음을 포기하고 놓아주는 것이다. 부모에게 내가 원하는 사랑을 받을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용서의 시작이다.

 



<내가 생각하고 정리한 부모의 용서 과정>


1. 부모 이상화를 멈추고 부모를 그대로 바라본다.

2. 부모에게 내가 원하는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3. 어렸을 때부터 느껴온 아픈 감정을 다시 몸으로 겪어내며 애도한다.

4. 부모를 상처받은 한 사람으로 바라본다.

5. 부모에게 어느 정도 책임을 질지 건강한 경계선을 설정한다.

6. 책임지는 행동은 두려움과 의무감과 죄책감이 아닌, 사랑으로 할 수 있는 만큼 한다.

7. 내 책임을 아내와 자녀에게 떠넘기지 않도록 배려한다.

8. 내면 아이의 새로운 부모가 되어준다.

9. 은총을 구한다.


이전 08화 남편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