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가 어려서부터 심어준 메시지 때문일까? 부모님과 대화할 때 화가 나는 동시에 죄책감을 느낀다. 나만 좋은 음식을 먹고 여행할 때 부모님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만 좋은 것을 누리는 이기적인 자식이 된 기분이다. 직장에서 불합리한 일을 겪었을 때 상급자에게 반발해놓고 금세 죄책감을 느낀다. 자녀에게 화를 냈다가도 바로 불편해진다. 모든 관계에서 양가 감정을 느낀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메시지의 영향때문이다.
부모님 두 분은 중매로 만났다. 둘 다 몸이 약해 평생 약을 먹어야 했고, 마음도 약했다. 두 분의 관계는 늘 위태로웠다. 정서적인 안정감을 얻기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엄마는 내게 이런 언어를 자주 사용했다."네가 당연히 ~해야지.", "하지 마", "그럴 줄 알았어.", "안 돼" 공감하려 하기보다 통제하고 억압했다. 어릴 때는 잘못이 나에게 있으니까 엄마가 혼내는 것인 줄 알고 살았다. 청소년이 되면서 억압된 감정이 분노로 표출됐지만 늘 죄책감이 뒤따랐다. '내가 부모를 이해해야 하는데.' 직업과 전공을 선택할 때도 '부모를 책임져야 할텐데.'라는 심리적 압박을 느꼈다.
부모에게 지극한 효자 남편
지금도 부모님과 통화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라 언성이 높아진다. 수치로 말하면 1에서 10까지 점진적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10으로 점프한다. 화를 낼 때는 언제고 시간이 지나면 죄책감때문에 내가 먼저 부모님께 전화한다. 아내는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놀란다. 부모님때문에 속상하면서 왜 먼저 전화를 거냐는 아내의 말에 이렇게 말했다."여보 우리 부모님은 원래 연약하신 분들이야.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 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었던 거야. 최선을 다한 거라고."부모를 변호하는 말에 아내는 한 번 더 충격받는다. 이럴 때마다 아내는 차분하게, 반복해서 알려주었다. "여보 화나잖아. 당신이 잘못한 거 아니야. 화내도 괜찮아." 아내 말이 맞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잘못된 것이 아닌데.
부모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이유는 어려서부터 학습된 탓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은 모두 잘못된 것처럼 여겨졌다. 집에서 항상 엄마의 눈치를 봐야 했고 내 마음도 불편하면서 엄마를 정서적으로 돌봐야했다. 부모 역할을 해야 사랑받을 수 있는 생존 방법이었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과 욕구를 반영해주지 않고 거절하면 아이는 자신의 존재가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없다. 지구가 멸망하는 것 같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자 큰 충격이기 때문이다.
부모 신격화
정서적, 신체적으로 학대를 받으며 자란 아이는 '부모를 신격화'한다. 부모의 잘못을 차라리 자신의 잘못으로 돌려서 부모에 대해 끊임없이 기대하고 환상을 품는 현상이다. 이것이 내 수치심의 뿌리다. 내 자아는 일찍부터 거절당했다. 아내가 보기에 나는 시부모에게 이상스럽게 효자 노릇 하는 아들이었다. 실제로는 내가 너무 불쌍한데, 이 감정을 대면하기가 너무 고통스러워 부모를 늘 불쌍히 여기며 살았다.
아직도 나는 부모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감정은 여전히 부모에게 분노로 표출된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인정과 사랑을 아직도 받고 싶기 때문이다. 감정의 진실을 알아차렸지만 '뿌리'는 그대로다. 치유하지 않으면 아내, 자녀에게 부정적 에너지가 계속 흘러갈 수밖에 없다. 치유하지 않으면 어머니가 나를 대한 것처럼 나도 딸을 억압하는 아빠로 살아야 한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무조건적인 사랑을 부모에게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충분히 나의 어린 시절을 슬퍼해줄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은 부모에게 화가 나면 속상한 마음을 표현한다. 정말 속상하고 슬프면 그냥 확 울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