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지 않았다. 함께한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라고 배웠다. 부모님과 함께 살 당시 아침을 깨우는 알람은 늘 서로를 비난하며 싸우는 소리였다. 식사 문화부터 일반적이지 않았다. 식사를 하기 위해 "밥 먹자."라는 말은 필요 없다. 엄마가 달그락 거리며 준비하는 소리가 들리면 조용히 각자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다. 식사를 마치면 잘 먹었다는 인사도 없이 자리에 일어나 각자 할 일을 한다. 아내가 밥을 다 먹고 그냥 몸만 일어나는 내 식사 문화를 보고 깜짝 놀랐었다. 부모님은 집을 나갈 때도 말없이 나가기 일수였다. 궁금하면 내가 대문을 열고 어디 가냐고 물어야 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그냥 잠깐 여기 앞에!" 소통을 도저히 배울 수 없었다.
세상에! 화목한 가족이 존재한다고?
초등학교에 다닐 때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충격받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식탁에서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닌가! 밥 먹으면서 대화를 한다는 것에 첫 번째 충격, 가족이 화목하다는 것에 두 번째 충격이었다. '모두가 우리 가족처럼 불편하게 사는 것이 아니구나.' 부모님과 사는 것이 불편했던 이유는 공감이라는 것을 경험할 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가족은 한 개인의 자아가 형성되는 곳이다. 건강한 가족은 건강한 자아를, 역기능 가족은 거짓 자아를 만든다. 부모가 수치심이 있으면 아이의 감정과 욕구를 반영해주지 못한다. 아이도 자신이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며 수치심을 입는다. 나는 암묵적으로 부모에게 부모 노릇을 하며 자랐고, 내 감정과 욕구를 포기하며 살아야 했기에 행복할 수 없었다.
결혼하면 내 집은 편안할 줄 알았다. 살아보니 부모님의 지긋지긋한 싸우는 소리가 우리 집에도 들렸다. 아이 앞에서 싸우지 않겠다는 내 다짐은 처참히 깨졌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여겼던 아내는 나를 어렵게 만드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가족이 주는 행복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았다. 아내에게 나는 열등감 남편이었다. 화내고 다시 사과하기를 반복하자 지친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노력 좀 그만해!" 내 노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치유가 필요한 문제라는 것을 단 번에 깨달았다. 아이에게 나는 화내는 아빠였다. 내 맘처럼 따라주지 않는 딸 아이를 억압하자 아이가 세 살 무렵 내게 한 말이다. "아빠 싫어!" 내 감정의 고통보다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가족을 지켜보는 고통이 더 커졌다.
같이 있을 때 '편안한 가족'
내 커리어와 인생도 가족 안에서 치유되지 않으면 세워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족에게 편안함을 주지 못하는 가장은 내 기준으로 불합격이다. 모든 선택을 '치유'와 '가정 세우기'를 우선순위로 두고 환경을 바꾸기 시작했다. 일하는 것도 변화시켰다. 작년 추운 겨울, 직장을 사임하고 새로운 마인드셋을 위해 부산으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3년 전 겨울에도 이직을 앞두고 부산에 와서 좋은 시간을 보냈었다. 부산은 수도권에 비해 비교적 온도가 높아 겨울에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여행도 따뜻한 날이 허락되어 아이들이 모레 놀이를 할 수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아무 걱정 없이 모레를 만지작 거리며 신나게 놀고 있는 모습을 지켜봤다. 서로 말없이 모레를 만지고 있으나 얼굴에는 편안한 미소가 묻어났고 파도소리는 잔잔하게 철썩였다. 당시 가족을 지켜보며 느꼈던 감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렇지. 같이 있을 때 편해야 가족이지!'
2021년 부산 송정해수욕장, 가족 여행
가족이 주는 편안함은 나의 내면의 고통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단 번에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가족은 불편한 곳이 아니라 베이스캠프처럼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일을 잘하고 성공을 이뤄도 가족을 불편하게 만들면 인생이 불행해진다. 가족 안에서 편안함을 누릴 수 있어야 행복한 성공이 아닐까? 좀 느리게 성공하더라도 그동안 돌보지 못한 내 가족을 위해 편안함을 제공해주는 가정이 되고 싶다. 이것이 지금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아내와 아이들은 나의 치유의 동력이다. 내게 주어진 인생을 마땅히 책임지게 만든다. 내가 혼자 살았다면 아마 1도 변화하지 않고 살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