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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존책방 May 09. 2022

손녀를 공감 못하는 우리 엄마

부모의 언어를 보면 내면아이가 보인다.

어버이날 6살 딸, 3살 아들을 데리고 아내와 함께 부모님을 만나러 갔다. 갈 때마다 며느리에게 인사하지 않는 엄마에게 무슨 말이라도 건네야 상대방이 편한 거라고 몇 번을 알려줬다. 오늘도 며느리와 손주들을 반길 줄 모르는 엄마는 말없이 웃고만 있다. 엄마가 아이들과 친해지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아 도움을 줬다. "엄마가 애기 손 씻는 것좀 도와주세요." 손 씻기가 잘 이뤄질 수 있을까 불안했다. 딸은 엄마에게 말했다. "할머니! 이거 비누요!"라고 말했지만, 엄마가 듣지 않았는지 딸은 반복해서 말했다. "비누요. 할머니 비누요." 5번, 6번을 말해도 엄마는 손녀의 '말'보다 손을 씻겨야 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와서 딸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이 원하는 비누로 하고 싶었는데 할머니가 주지 않았다고 한다.


'아. 어렸을 때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했겠구나.'   


아내가 나랑 살면서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소통'이다. 나는 무슨 일이 있으면 말을 잘 안 하는 편이다. 말을 했을 때 좋았던 경험이 별로 없었다. '말을 해봤자 해결되지도 않는데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다. 큰 일이든 사소한 일이든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결혼 후 아내와 살면서 처음 배웠다. 엄마가 손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포기한 순간이 얼마나 많았을지 짐작해봤다.


밖에서 식사하기가 여의치 않아 집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우리 집안 문화를 경험시켜주기가 싫어서일까? 오랜만에 오는 집인데 편하지가 않다. 보통 아들, 며느리가 아이들을 먹이느라 잘 못 먹지 못하면 도와주거나 자신이 먹일 테니 먼저 먹으라고 말이라도 해주면 참 좋을 텐데. 우리 엄마는 땀을 뻘뻘 흘리며 본인 음식을 맛있게 드신다. 딸이 먹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왜 그런가 했더니 혀를 깨물어서 속상해 울고 있었다. 엄마는 뒤늦게 아이를 달래려고 했다. 내가 예상한 "아이고! 우리 손녀딸 너무 아팠겠다~"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왜 울어? 왜 그럴까? 얘야 울지 마! 괜찮아 울지 마! 뚝!"  


깜짝 놀랐다. 우리 엄마의 언어는 내가 사용하는 언어와 똑같았다. 나도 딸이 울 때 속상한 마음을 먼저 알아주기보다 왜 우는지 원인을 물었고, 공감보다 해결해주려고만 했다. 아이 울음소리가 듣기 힘들어지면 "이제 그만 울어도 괜찮아. 뚝해!"라고 말한다. 부모의 언어가 나의 언어가 똑같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사실이다. 부모가 내 자녀를 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배워야 한다. 나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부모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도 아직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감정은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을 부모를 통해 느낀다. 부모가 사용하는 언어를 잘 들어보면 내면아이가 어떤 억압된 감정이 있을지, 어떤 말을 가장 듣고 싶어 했을지를 알 수 있다. 아이는 부모의 눈빛과 말,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분위기를 먹으며 자란다.




우리 엄마가 내 딸을 대하는 모습을 보니 어떤 욕구가 좌절되었을지 힌트를 얻었다. '나는 내가 느끼는 그대로를 인정받고 싶었구나!' 내 마음을 좀 알아달라고, 힘들 땐 힘드냐고, 슬플 때는 괜찮냐고, 물어주고 반응해주길 원했다. 간단했다. 나는 인정받고 싶었고 공감받고 싶은 아이였다.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길 원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내 말을 들어주고 지지할 수 있는 부모가 필요했다. 부모를 돌보는 아들이 아니라 아들로서 사랑을 받고 싶었다. 부모를 책임져야한다는 부담보다 부모가 주는 사랑과 공급을 누리고 싶었다.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이 불편해도 의식해서 억지로라도 만나려 한다. 어려서부터 부모 신격화로 잘못 형성된 믿음을 바로 잡아야하기 때문이다. 부모를 그대로 바라봐야 내가 또렷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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