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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백지 Jan 25. 2022

정관수술 후 진리에 다가서다

스님과 예수님이 어깨동무한다.

"배우자 분 동의는 받으셨죠?"


정관수술 시 받는 질문이다. 참신했다. 나는 예수처럼 아들 딸을 낳아 '다 이루었도다'의 형태로 수술을 결심했는데 배우자의 동의 없이 자신의 은밀한 부분을 잘라내고 아무렇지 않게 2세 계획을 무산시킬 수도 있다전략적 물음에 감탄했다.


'아 그런 방법으로 대의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겠구나...'


차가운 수술대 위에 올라 마취가 되며 과거의 내 삶이 절단되었음을 느낀다.


학교에 보내면 마음이 편해질까? 대학에 보내면 안심이 될까?자녀가 결혼해 살게 되면 마음이 놓일까?아니라고 본다.


자식은 영원히 아플 손가락이다. 클 때까지 걱정, 어디를 보내도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나의 단점들에 익숙해질 때쯤 아이도 그 걸 닮을까 봐 서글프다. 세상에 이리저리 치이다 혹여 상처받진 않을까 걱정이다. 꿈처럼 멀게 느껴지는 학교 복도의 차가운 공기가 수술대 위의 나처럼 아득하다.


젊은 세대에게 자녀 양육은 폭탄 돌리기에 가깝다. 자신의 가난을 대물림할 배구공을 자식에게 토스하면 세상이란 네트가 너무 높아 곤충처럼 거미줄에 묶이고 만다. 예나 지금이나 약한 존재는 가진 자의 먹잇감이 된다. 아직 성장통이 끝나지 않은 자녀들은 부모가 보기에 언제나 약해 보이기 마련이다. 나 역시 거미줄에 걸리지 않으려 발버둥 치다 아내라는 하이퍼 거미를 만나 수 년째 봉인 중이다.


성적인 욕망을 절제할 수 있다면 삶이 단순해진다. 여자의 거미줄을 좀 더 오랜 시간 피할 수 있다. 발기는 자주 안 되어도 남자를 더 남자답게 만들어 주는 듯하다. 야동만 안 봐도 삶이 윤택해진다. 수시로 접했던 나체의 신음소리가 명절처럼 달력에서 멀어지자 나는 그 비어있는 틈에 많은 영감을 채우게 됐다. 나체 대신 니체의 사상도 장바구니에 담는다. 이 정도면 마법의 성이다.


적당히 고민해 볼 문제이다. 하루에 무얼 보고, 듣고 먹는지로 그 사람의 삶이 결정되는 문제에 대해 말이다. 가난한 습관이 주를 이룬다면 가난한 상태에 가까워지고, 몸과 마음을 명상으로 채우면 자위하는 시간조차 아깝다. 운동은 몸이 하는 명상이다. 나 역시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운동은 수련에 가깝다. 그동안 너무 손 운동만 열심히 해왔음을 반성한다.


정확히는 성적인 욕망이 줄기 시작한 게 정관 수술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어쩌다 우연처럼 시기가 겹쳤을 수도 있다. 여름이 되면 많은 이들이 덥다고 옷을 벗듯 욕망의 바람이 다시 노년에 찾아 올런 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역시 어머니와 사별하신 후 다른 이성 분과 교제하시며 유튜브에 각종 섹스 정보를 추천받는 걸 보면 수컷의 알고리즘은 죽기 직전까지 기대해볼 만한 능력이다. 혹시 모를 일 아닌가. 아들뻘 동생이 태어날 수도 있는 삶의 기적을 말이다.


아무튼 이제 나이의 앞자리가 4로 시작하니 지금까지 고추의 지배를 받으며 살았던 삶에 종지부를 찍을 때도 되었다고 본다. 불수의근이라 생각되던 고추가 이제 기력을 잃고 있다. 남자는 두 개의 뇌가 있다 여겼는데 그동안 함께했던 다른 뇌가 능력을 잃으니 다른 뇌의 활동이 많아졌다. 아직 벗은 여자를 보아도 인류애가 느껴질 정도로 성장하진 않았는데 성인용 기저귀를 찰 시점에 이르러서도 과연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갱년기, 호르몬의 중첩이 다가오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건 그런 호르몬의 변화가 가져올 결과일지도 모른다. 살다 보니 변하더라. 변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어린 시절처럼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맛 역시 내가 기대하지 않았던 충격을 전해줄 때 임팩트 있게 각인되곤 한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해 보이는 얼굴에서 줄담배를 즐기며 온갖 성적 경험치로 상대를 압도할 때 남자는 비로소 알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란 사실을. 그러나 그 걸 깨닫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을 낭비하며 산다. 그 게 인생이라면 나는 꽤 잘 살았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시간을 허비하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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