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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우 Oct 19. 2023

충전

 “자기야 나 충전시켜 줘.”


 너가 내게 말했어. 아, 정확히는 너의 복제품이지. 네 얼굴, 네 목소리, 네가 짓던 표정을 하고 있지만 너는 아니야. 철근으로 만들어진 모방품일 뿐. 가끔 네 영혼을 금속 덩어리에 가둬버린 것만 같아 미안하다가도, 네 영혼은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라는 사실이 떠오르면 조금 괜찮아져.


 너를 복제하는 건 생각보다 그리 힘들지 않았어. 우선 너와 관련된 디지털 데이터를 모조리 쓸어모았어. 너의 사진들, 영상들, 목소리가 남아있는 음성들. 네 컴퓨터에 한가득 쌓여있는 일기들까지 전부 담았어. 숨어서 일기 쓰던 너한테는 미안하지만, 덕분에 안드로이드가 더 정교해질 수 있을 거랬어.

 마지막으로 네가 쓰던 전자 기기들까지 업체에 넘기니까 그 사람들이 인터넷 사용 기록, 결제 내역, GPS 기록까지 모두 뒤져서 너라는 사람을 완벽히 데이터화했어. 그 데이터들을 딥카피 프로그램에 넣고 며칠 돌리니까 정말 너 같은 인공지능이 하나 나오더라.

 네 인공지능이 처음 나왔을 때, 한번 직접 대화해 보고 피드백 달라길래 아무 생각 없이 1:1 챗방에 들어갔어. 그랬더니 네 첫마디가 뭐였는지 알아?

 “날 인공지능으로 만들어? 데이터 따위가 날 따라 할 수 있을 줄 알았어? 너 돈 날린 거야, 밥팅아. 난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채팅방 들어가자마자 우다다다 쏘아대는 거 있지. 그걸 보고 단번에 알았어. 아, 너구나. 진짜 너구나. 그 뒤로 네 이름을 가진 AI랑 세 시간 동안 채팅 했어. 담당 개발자가 이제 그만하고 나오래서 결국 쫓겨났고. 그날의 황홀함이란 죽는 순간까지 잊을 수 없을 거야. 사라져 없어진 줄만 알았던 널 다시 만난 날이었으니까. 형태야 어떻든.


 다음으로는 네 본체가 될 안드로이드를 만드는 작업을 했어. 오히려 이게 쉽지 않더라. 결정할 게 어찌나 많던지 결혼식 준비의 악몽이 다시 떠오르더라니까. 피부 소재는 인조 피부로 할지 저렴한 실리콘으로 할지, 설정 IQ는 얼마로 하는 게 좋을지, 다기능 사이보그 암을 탑재할지 말지.

 너를 개선시킨다는 발상 자체가 싫어서 그냥 전부 원래의 너와 똑같이 해달라고 말했어. 그런데 안드로이드공들은 전부 변태라는 소문이 맞나 봐. 골반이랑 가슴은 너보다 묘하게 크게 나온 것 같더라. 너가 봤다면 길길이 날뛰면서 항의하러 갔을 거야.

 완성된 안드로이드는 소름 돋을 정도로 너와 똑같았어. 너무 똑같아서 처음 채팅을 했을 때처럼 감격스럽기보다는 오히려 당황스럽더라. 모든 게 너 같으면서도 너 같지 않았어. 담당 개발자는 원래 처음엔 다 그렇다고, 며칠만 지나면 금방 적응될 거라고 했어.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되더라. 처음엔 아침마다 너가 옆에 잠들어 있는 게 이상해서 벌떡 일어났는데, 어느 날부턴가 널 끌어안고 잠을 더 청하게 됐어. 이제는 배터리를 넣을 때만 제외하고는 모든 순간에 너를 인간처럼 생각해.


 아, 안드로이드 배터리는 젤리 모양이야. 진짜 사람이 먹는 젤리. 딸기 맛, 포도 맛, 망고 맛처럼 온갖 맛이 다 있고 젤리 안에 작은 과일 조각들까지 구현해 놨어. 가끔 잘못 먹고 탈 나는 애들이 있어서 모양을 일반 배터리처럼 바꿔야 한다는 말도 많은데, 아마 쉽지 않을 것 같아. 자신의 안드로이드를 진짜 사람으로 대하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반발이 쏟아질 테니까.

 너는 매일 아침 나한테 충전시켜 달라고 말해. 그럼 나는 배터리 서랍을 열면서 물어. “무슨 맛?” 넌 한참을 고민하다가 맛 하나를 골라. 보통 딸기 맛이야. 배터리 하나를 집어서 네 입에 밀어 넣어 주면 너는 그걸 오물오물하는 척하다가 꿀떡 삼켜. 그리고 빙구 웃음을 지으면서 다시 컴퓨터 앞으로 돌아가지.

 안드로이드는 스스로 배터리를 먹을 수 없게 프로그래밍되어 있거든. 눈앞에 배터리가 있어도 그걸 입에 넣지 못해. 주인으로 설정되어 있는 사람이 주는 배터리만 먹을 수 있어. 오로지 나의 의지에 따라서 너의 존속을 결정할 수 있는 거야.

 그래서 한번은… 한번은 너에게 더 이상 배터리를 주지 않기로 결심했었어. 너를 기계로 만들어 놓고 허상 속에서 살아가는 내 자신이 너무 끔찍해서. 너가 아무리 앙탈을 부리고 떼를 써도 배터리를 주지 않았어. 그랬더니 어느 순간 전력을 다한 너가 점점 꺼져가는 게 보이더라. 말이 조금씩 느려졌고, 움직임이 더뎌졌고, 눈동자의 빛이 점점 희미해졌어. 너가 이 세상을 떠나던 그날처럼.

 생각이 의식을 거치기도 전에 미친 듯이 배터리 서랍을 열어제끼고 젤리를 네 입 안에 밀어 넣었어. 배터리를 꿀떡 삼킨 너는 한순간에 다시 살아나더니 그 빙구 웃음을 지어 보이더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울어버렸어. 온갖 색깔의 배터리들 사이에 퍼질러져서. 내가 낼 수 있는지조차 몰랐던 소리들을 내면서 쌓아왔던 울음을 쏟아냈어.

 너도 이렇게 다시 살려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딸기 젤리 하나 입에 물려주면 오물오물거리다가 다시 바보처럼 웃어 보일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 품에 안겨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온갖 방법을 동원해 봐도 결국 널 살릴 수는 없었어. 인간은 왜 이토록 여리고 나약한지.


 너는 울고 있는 내 앞에 앉아 조용히 손을 잡아줬어. 수족냉증이 있는 너의 손은 항상 차가웠는데, 그래서 내가 손을 잡고 매번 데워줬어야 했는데, 온열 기능이 있는 안드로이드의 손은 이미 너무 따뜻했어. 네가 아니라는 생각에 손을 빼고 싶었지만, 그러면 널 영영 놓아버리는 것 같아서 그냥 잡았어. 아마 앞으로도 한동안은 그 손을 놓지 못할 것 같아.

 미안해 자기야. 이 안드로이드가 너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야. 널 대체하려는 건 더더욱 아니고. 나는 그냥 너와의 작별을 조금 미루고 있는 것뿐이야. 내 세상의 전부가 너였는데, 단 한순간 만에 네가 없는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우리의 이별이 조금만 더디게 흘러갔으면 해서, 그래서 이렇게라도 네 그림자를 붙들고 있는 거야.


 사랑해, 슬아야. 조금만 더 붙잡다가 너무 늦지 않게 놓아줄게. 약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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