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에 익숙해지는 것이 목표인 시기는 마라톤에 참가하며 끝이 났다. 10킬로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되자 나는 달리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여전히 힘들지만 이제 꾸준히 7~8킬로를 매일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와 함께 조금 더 잘 달리고 싶은, 즐겁게 달리고 싶은 시기가 시작됐다.
즐겁게 달리기에 제주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보통의 날엔 아이를 등교시키고 집에서 제일 가까운 바다로 달리러 간다. 이호테우해수욕장에서 알작지 연대포구로 이어지는 코스는 이호테우에서 제주바다에 들뜬 관광객을 보며 달리기 시작해 조용하고 평화로운 알작지를 지나 해안산책로 데크가 잘 깔린 연대포구까지 북적임 없이 달릴 수 있다. 달리느라 심장은 터질 듯 하지만 바라만 봐도 마음이 고요해지는 이곳에서 아침 일찍 조용한 바다를 달리면 내가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조금 더 힘든 코스를 달리고 싶은 날엔 용담해안산책로를 선택한다. 용두암에서 시작해 해안도로를 달리면 쭉 뻗은 도로와 중간중간 오르막 내리막이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사실 굉장히 힘들다. 하하하. 저 멀리 수평선을 보며 달리다 반대편으로 눈을 돌리면 한라산이 우뚝 자리하고 있다.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 이 코스는 중간에 끊어지는 길 없이 10킬로를 달릴 수 있어 오래 달리고 싶은 날 선택하는데 다 달린 후의 뿌듯함이 정말 최고다.
예쁜 풍경이 보고 싶은 날엔 도두봉에 올랐다 내려오는 짧은 트레일러닝으로 시작해 무지개도로를 달린다. 알록달록 무지개 도로엔 가족, 연인, 친구들이 모여 귀엽고 사랑스러운 순간을 남기느라 바쁘고 그들 사이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달리면 나까지 관광객인 듯 즐겁다.
동쪽바다 달리기는 제주의 대표적인 마라톤 대회가 열릴만큼 아름답고 긴 해안도로가 있어 장거리를 뛰고싶은날 딱이다. 대회인듯 아닌듯 마음먹고 달리면 끝없이 아름다운 바다와 바람에 행복해진다. 이곳의 단점은 바람이 강한날엔 두배로 힘들다는 것.
판포, 월령 서쪽 바다는 해질시간에 맞춰 달리면 어마어마한 석양을 보며 달릴 수 있다. 서서히 번지는 석양을 보며 바다 옆을 달리면 커다란 풍차와 붉은 석양이가슴을 뛰게한다.
숲에서 달리고 싶은 날엔 한라수목원이 있다. 울창한 숲 속 흙길은 포장도로보다 조금 더 힘들지만 나무가 뿜어내는 향기에 취해 조금 더 힘을 내보자고 혼자 파이팅을 외치고 달리기가 끝나면 숲 속 헬스장에서 바벨을 혼자 정해둔 횟수만큼 들고 광이오름에 올라 한라산에 인사하며 바다 말고 숲에서 달리기도 이렇게 좋구나 감탄한다.
지루할 틈 없이 아름다움을 주는 나의 러닝코스들은 런테기없이 1년 넘게 즐거운 달리기를 가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