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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에 앉는 마음
Oct 24. 2024
935. 무엇보다 건강이 최고란 것을
겪어보면 안다, 김홍신著 해냄刊
한가족이라도 취향이 제각각이니 놀러 가는 스타일도 다르고 행선지도 다르다. 여행을 좋아하는 작은 아이와 아내는 뉴욕 같은 도시를 좋아하고 나는 한적하고 시골스러운 분위기를 좋아하며 사람 붐비는 곳은 질색이다. 취향이 다르니 국내도 그렇고 해외도 그렇고 가족여행지를 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풍광 좋은 조지아를 가는 것이 어떻겠냐 하니 조지아는 트레킹을 해야 제대로 볼 수 았기에 아빠 같은 저질체력으로는 쉽지 않은 곳이라며 거부당했다. 스케쥴링을 담당하는 막내가 아빠 체력과 취향을 감안해 고른 여행지는 그리스 크레타 섬이다. 네덜란드에 가서 막내와 합류해 그리스 크레타 섬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5년 전 떠났던 가족여행보다 챙겨야 할 것이 많이 늘었다. 한 달에 한 번가는 병원 일정은 조율했고 처방약도 조정했다. 물을 많이 마셔야 하는 약을 복용하고 있어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한다. 유럽은 화장실 사용이 불편하니 여행 중 곤란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므로 의사와 협의해 여행기간 중 일부 약 복용을 중단하기로 했다.
가끔 찾아오는 통풍에 대비해 통풍치료제는 비상약으로 처방받았다. 통풍예방약을 복용하고 있고 요산 수치가 정상보다 많이 낮아졌음에도 가끔 통풍이 찾아온다. 요산수치가 정상이라 해도 급격하게 오르거나, 급격하게 내려가면 통풍이 찾아온단다. 요산수치를 올리는 붉은 육고기와 등 푸른 생선, 패류, 갑각류, 두족류를 많이 먹어도, 단백질을 너무 적게 섭취해 요산수치가 내려가도 통풍이 온다니 이상한 병이다.
평소에도 지중해식 건강식인 야채, 과일, 콩, 올리브오일 등을 이용한 샐러드로 아침식사를 하고 있고 점심, 저녁도 통풍 관련 음식의 섭취량을 제한하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 살짝 걱정되는 부분이다. 끔찍한 통풍의 고통을 생각하면 눈앞에 놓인 그리스 음식, 특히 해산물이 유명한 크레타응식을 먹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해외여행 준비하며 병원진료일정 변경, 통풍 약을 챙기는 등 건강에 신경 쓰는 나이가 되었다. 연배가 되어 준비물을 챙기다 보니 문득 젊은 시절 뉴욕에서 만났던 노부부가 생각났다. 뉴욕 자유의 여신상을 둘러보는 유람선에서 환갑기념 효도관광 오셨다는 노부부가 내리지 않고 배에서만 머물기에 말을 걸었다. ‘내려서 전망대에 올라갔다 오시죠?’ ‘아니야. 햄버거만 먹고는 못 다니겠어. 어여 다녀와.’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는데...’
30대 중반에 뉴욕에서 만났던 노부부가 안쓰러웠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분들보다 더 나이를 먹은 것이 현재의 내 모습이다. 맛난 것을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싶어도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 포기해야 하는 사정을 겪어보니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건강이 최고란 것을.
굶어 보면 안다 밥이 하늘인 걸
목마름에 지쳐보면 안다 물이 생명인 걸
일이 없어 놀아보면 안다 일터가 낙원인 걸
아파 보면 안다 건강이 엄청나게 큰 재산인 걸
잃은 뒤에 안다 그것이 참 소중한 걸
이별하면 안다 그이가 천사인 걸
지나보면 안다 고통이 추억인 걸
불행해지면 안다 아주 작은 것이 행복인 걸
죽음이 닥치면 안다 내가 세상의 주인인 걸
- 겪어보면 안다, 김홍신著 해냄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