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케 류노스케著, 포레스트북스刊
가볍게 사고를 전환한다 (중부경전 ‘삭감경’)
사람은 자신의 의견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경향이 있어 자신의 의견을 철회하는 것에는 서툽니다. 그러니 당신은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내려놓고 가볍게 사고를 전환할 수 있도록 늘 연습하세요.
결핍감은 끊임없이 커진다 (법구경 334)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걸 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 결핍감의 블랙홀이 열리고 ‘원한다, 부족하다, 좀 더’라며 무언가를 구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갈애가 커집니다.
숲 속에서 바나나를 찾아 이곳저곳 뛰어다니는 원숭이처럼 당신의 마음은 여기저기 안달복달 빙글빙글 윤회하며 죽어서조차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결핍감은 전이되는 암과 같아 이쪽저쪽으로 번져갑니다. 결핍감이 번지는 것을 느끼고 알아챘다면 지혜의 삽으로 뿌리를 파내야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본다 (법구경 365)
당신이 자기 손에 주어진 것을 보지 않고 타인의 손에 있는 것을 보고는 ‘좋다, 갖고 싶다’며 부러워한다면 마음의 고요함은 산산이 부서질 것입니다. 당신 손에 주어진 게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 해도 거기서 행복을 찾아낸다면 ‘만족을 아는’ 충족감으로 인해 마음은 깨끗하게 정화됩니다.
당신은, 당신의 마음에 쌓인 생각의 집합체 (법구경 1, 2)
당신이라는 존재는, 과거에 당신이 생각하고 느낀 내용 하나하나가 마음에 쌓이고 섞인 결과물입니다. 당신은 그 마음의 조각보로써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이 나쁜 생각을 한다면 나쁜 업의 에너지가 마음에 각인되고, 그만큼 당신은 나쁜 쪽으로 바뀝니다. 당신이 따스한 생각을 한다면 긍정적인 업의 에너지가 마음에 각인되고, 그만큼 따스한 당신으로 변화합니다.
자신보다 성격이 좋은 친구를 갖는다 (경집 47)
당신이 인생길을 걸어갈 때 자신보다 성격이 좋은 친구 혹은 모처럼 자신과 비슷할 만큼 성격이 좋은 친구와 사귀어도 좋습니다. 당신의 마음은 상대에 따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좋아질 것입니다.
자신보다 성격이 나쁜 친구밖에 만날 수 없다면 차라리 홀가분하게 ‘혼자’를 즐기며 홀로 걷는 게 좋습니다. 마치 하나만 우뚝 솟아있는 무소의 뿔처럼
돈벌이에 집착하지 않는다 (상응부경전)
당신이여, 나는 돈과는 무관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만일 돈이 다 떨어지면 어쩌지’와 같은 걱정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습니다. 공허함에 사로잡혀 ‘돈으로 모든 걸 마음대로 하겠다’는 궁핍한 마음도 가지지 않습니다. 고로, 나는 행복합니다.
부처의 가르침의 정수 (법구경 183, 185)
욕망, 화, 미망이라는 이름의 악을 만들지 않고 마음을 선하고 밝게 정화하여 성격을 개선하는 것.
다른 이를 나쁘게 말하지 않고, 다른 이에게 상처 주지 않습니다. 스스로 ‘이렇게 하자’고 마음으로 정한 규칙을 지키고, 자신을 철저히 통제합니다.
식사는 많지도 적지도 않게 적당량을 먹습니다. 혼자서 조용히 일어나 마음의 성장, 즉 성격 개선에 힘습니다.
단지 이 정도가 부처가 전하려고 하는 가르침의 정수입니다.
무작정 믿어서는 안 되는 열 가지 (증지부경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 말이 옳다, 저 사람은 틀렸다’고 말하기에 누구의 말이 옳은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다른 이에게 속아 세뇌당하고 자유를 잃지 않으려면 다음의 것을 주의하세요.
첫째, ‘누가 당신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는 소문을 들어도 확인될 때까지는 믿지 마세요.
둘째, ‘이곳에서는 옛날부터 이랬다’며 전통을 들먹인다고 해도 무작정 믿지 마세요.
셋째, 유행하고 있고 평가가 좋다고 해도 무작정 믿지 마세요.
넷째, 성전이나 불경이나 책에 쓰여 있다고 해서 무작정 믿지 마세요.
다섯째, 실제 확인해보지 않은 억측은 믿지 마세요.
여섯째, 옳게 보이는 ‘이론’이나 ‘주의’에 의한 것이라 해도 무작정 믿지 마세요.
일곱째, 상식에 맞는 것이라 해도 무작정 믿지 마세요.
여덟째, 당신과 의견이 같다고 해서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쉽게 믿지 마세요.
아홉째, 상대의 의복이 훌륭하거나 직업이 좋거나 태도가 정중하다고 해서 겉모습에 현혹되어 믿지 마세요.
열 번째, 상대가 자신의 스승이라 해도 맹목적으로 믿지 마세요.
영적인 것에 의존하지 않는다 (법구경 188, 189)
스트레스에 위협받아 마음이 흐트러지면 신에게 의존하려 합니다. 어딘가의 교주를 믿거나 수호령을 숭배하거나 영적인 나무를 믿거나 그것에 의존하려 합니다. 이렇게 영적인 존재에 기대거나 영적인 사람에게 의지해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찰나의 안심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안심할 수 있는 안식처가 아닙니다. 그렇게 의존해도 자유를 빼앗기고 세뇌당할 뿐 번뇌를 낳는 마음의 구조가변하지 않으니까요.
쾌감과 불쾌감에서 자유로워진다 (경집 736,737)
눈에 보이는 것, 귀로 들리는 것, 코로 맡아지는 것, 혀에 느껴지는 것, 몸 안에서 느껴지는 감각, 마음에 와닿는 생각. 이 여섯 개의 감각에 멍하니 마음을 빼앗기면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멋지다’며 쾌감에 현혹되거나 ‘불편한 게 떠올랐다’며 불쾌감에 기분 나빠지는 등 쾌감과 불쾌감에 지배당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유전자가 가리키는 대로 운명에 농락당하고 邪道(사도)로 굴러 떨어져 자유를 잃은 노예가 됩니다. 그러나 여섯 개의 감각이 당신에게 접촉하는 입구를 잘 감시하면 쾌감과 불쾌감에 의식 없이 휘둘리는 걸 막을 수 있습니다. 논, 코, 귀, 입, 몸, 생각의 문에 접촉할 때마다 당신의 마음을 잘 제어하면 자유가 당신의 손에 남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모은다 (상응부경전)
과거를 떠올리며 슬퍼하지 않고, 미래를 공상하며 멍해 있지 않고, 그저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전념하면, 당신의 얼굴색은 활기를 띠고 유쾌하게 활발해질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무심코 ‘지난여름은 즐거웠는데’ 라거나 ‘다음 주, 그 사람과 만날 수 있을까’라는 등 과거나 미래라는 비현실에 마음을 빼앗긴다면 이윽고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되어 버립니다. 마치 꺾어져 시들어가는 풀처럼.
부처의 삶을 돌아보며
부처의 가르침을 받으러 온 바라문교 사제에게 ‘지금 이대로 일을 하면서 쉴 때는 내게 명상을 배우러 오면 좋겠다’라고 합니다. 부처는 간접적으로 자신이 가르치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부처의 가르침이 ‘종교’라면 다른 종교는 방해가 됩니다. 부처가 가르치는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심리적인 훈련에 가깝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불교’의 모습은 부처가 세상을 떠난 후 갖춰졌습니다. 부처가 죽은 후 ‘드디어 위대한 스승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이제부터 자유로워졌다’며 기뻐하는 제자들을 목격한 장로 마하가사파가 교단 결속을 위해 제도를 정비한 것입니다.
불교의 교파가 분열되었어도 죽은 부처를 숭배하고 신격화하는 형태로 불교교단이 형성되었고 경전도 교파에 맞게 수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