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著, 유노 콘텐츠그룹刊
법구경(법구역음. 홍익출판사刊)이 직역에 가깝다면 이 책은 의역으로 불교에 문외한이라도 읽기 편하고 이해하기 쉽다. 법구경뿐 아니라 폭넓은 인용으로 불교 관련 서적이 아닌 듯 착각하게 만든다. 정운스님의 방대한 지식이 감탄스러울 정도로 넓고 깊다.
추위를 견디고 꽃 피우는 매화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불교에서 ‘사바세계’라고 하는데 이를 한자어로 말하면 ‘堪忍(감인) 세계’가 된다. 참고 견디면서 살아야 하는 세상이라는 뜻이다. 사군자(梅, 蘭, 菊, 竹) 가운데 매화가 사람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이유는, 추위(아픔과 고통)를 묵묵히 견딘 뒤에 제일 먼저 봄을 알리며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하루를 참아서 몇 달을 벌고, 며칠을 참아서 몇 년을 번다는 말이 있다. 잠깐의 인내가 먼 미래에 행복을 불러들인다는 뜻이다.
가족, 회사 동료, 부부 등 어느 구성원 사이에서든 자신이 더 참아야 할 때가 많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상대방도 그대의 행동을 참을 때가 많았다는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인욕 하는 그대의 진심을 알아주는 세상이 반드시 올 것이다.
단번에 얻고자 하면 단번에 잃는다
하늘에서 七寶(칠보: 7가지 보석)가 떨어진다 해도 사람의 욕심은 채워지지 않는다. 인생에 즐거움은 잠깐이요. 괴로움이 더 많은 법, 지혜로운 사람은 이러한 이치를 잘 안다.
인간이 세상을 사는 데 만족이란 없다. 황금이 산더미처럼 쏟아져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중생이다. 그 불만족이 훗날 고통을 만들어내는 근원이 될 수 있다.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이 탐욕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은 5인데 욕심내는 기대치는 10이라 갭 차이가 고통이 된다.
채근담에서는 ‘탐욕 많은 사람은 금을 나누어 주어도 옥을 얻지 못함을 한탄하고, 재상자리를 주어도 제후가 되지 못됨을 불평불만한다.’라고 했다.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홀대받는 것
우리는 평생 육신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지만, 육체는 숨이 끊어지는 순간부터 썩기 시작한다. 또 수십억 재산이 있어도 다 놓고 떠나야 한다. 평생 사랑하고 아꼈던 가족, 친구들은 당신의 죽음을 애달파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릴 것이다. 나를 구성하는 물건과 사람들은 결국 영원히 함께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세상을 떠날 때 유일하게 함께하는 ‘마음’은 평생 살면서 가장 소홀히 여긴다.
마음을 살찌우는 것에 대해 모두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불교에서는 마음공부가 어떠하냐에 따라 업이 형성되고 저장되어 다음 생으로 연결된다. 그 마음공부가 잘 되었다면 해탈로 연결된다.
지금, 바로, 여기에 행복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욕심을 버리고, 모든 것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智者(지자)는 어떤 번뇌에도 걸림이 없으며, 번뇌가 일어난 자리가 곧 지혜인줄 안다. - 賢哲品(현철품) -
이준관 시인의 ‘넘어져 본 사람은’이라는 시는 넘어지게 한 돌부리를 원망하고 걷어차 버릴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붙잡고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 짚고 일어나라’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불안한 마음자리에 편안한 마음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불안과 편안한 마음이란 손등과 손바닥의 관계와 같아 마음이 힘들고 괴롭다고 밖에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다. 답은 자신에게 있다.
충고를 관심으로 받아들여라
중국에는 ‘사오관셴스(少關閑事)’라는 말이 있다. 자신과 관련되지 않은 일이면 간섭하지 않는 관습문화가 있어 옆사람이 죽거나 곤란을 당해도 돌아보지 않는다. 요즘은 중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무관심이 팽배해지는 것 같다. 근자에는 연장자의 충고를 꼰대의 잔소리로 여기는 바람직하지 못한 문화가 지배적이다.
숫파니파타에 이런 내용이 있다. ‘다른 사람이 충고하면 반성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라. 함께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악한 마음을 품지 말고, 좋은 말을 많이 해라. 시기가 적절하지 않을 때는 말을 삼가고, 헐뜯으려는 마음을 품지 말라.’
부처님 시대에도 남에게 충고하거나 충고를 좋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없어 부처님께서도 저런 말씀을 하신듯하다. 상대에게 충고할 때는 적절한 시기에 빈정대지 않으며 진심을 담아야 한다. 상대가 내게 충고할 때는 ‘저 사람부터 사랑받고 있구나. 무관심하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을 텐데...’라고 받아들이자 마음을 조금 열고 살자
인생을 함께할 ‘도반’이 있는가?
가섭존자는 10대 제자 중 특히 청빈하고 올곧았다. 제자 두 명과 수행하고 있었는데 한 명은 성실했고 다른 한 명은 게으르고 진리에 대한 믿음도 없었다. 게으른 제자가 잔꾀를 부리고 요령을 피워 가섭이 타일렀으나 고쳐지지 않았다. 어느 날 게으른 제자가 신도에게 가섭존자가 병들었다며 음식을 준비해 달라 한 후 자기가 먹어치웠다. 가섭이 이를 알고 꾸짖고 성실한 제자만 데리고 탁발을 나가자 게으른 제자는 가섭의 물건을 모두 불태우고 떠나버렸다.
부처님이 이 사실을 알고 ‘혼자 수행했더라면 고초를 겪지 않았을 터인데 어리석은 자와 함께했기에 고초를 겪는구나. 어리석은 자와 함께하느니 홀로 수행하라.’하셨다. 이런 일은 현시대에서도 종종 발생된다. 근묵자흑이라 했던가? 아무리 올곧고 심지가 굳은 사람이라도 주변 색깔에 물들기 마련이다. 품행이 바르지 못한 사람과 어울리면 옳지 못한 것을 옳은 것이라 여기게 된다.
불교에서는 ‘길벗’이란 뜻의 ‘道伴(도반)’을 쓴다. 선후배를 떠나 함께 나란히 걷는다는 동행의 의미이다. ‘숫타니파타’에서도 ‘좋은 道伴을 만나지 못하면, 무소의 불처럼 혼자서 가라’하였다. 일반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다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도 태어난 날은 다르지만 죽을 때는 함께 하자며 도원결의를 했다. 공자도 제자인 안회가 죽자 ‘하늘이 나를 저버렸다’며 가슴 치며 통곡했다. 안회는 공자에게 제자가 아닌 知音(지음: 마음이 통하는 친한 벗)이었던 것이다.
세상 살며 진정한 벗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가치관이 맞는 사람과 인연이 되기도 쉽지 않지만 인연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수백수천의 지인 중에 그대를 알아주는 知音은 몇 명이나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