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세차를 했다. 작년 7월 초에 받은 차를 이듬해 3월인 오늘 처음 씻겼으니 세상에 나온 지 8개월 만에 첫 목욕을 한 셈이다. 아내도 나도 참 세차를 안 한다. 그렇다고 차를 더럽게 쓰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렇다. 차를 더럽게 쓴다. 험하게 쓰지는 않는데 좀처럼 세차를 하지 않는다. 집에 있는 또 다른 차는 작년 추석 무렵에 씻긴 것이 마지막 세차인 것 같으니 아직 세차할 때가 오진 않았는데 작년 가을에 세차를 한 후 지금까지 동네 가까운 곳을 갈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타지도 않고 지하주차장에서 잠만 자고 있던 녀석이라 뿌연 먼지가 아주 곱게 차 전체에 앉아 있다. 며칠 전에 아내가 오랜만에 그 차를 타고 외출했다가 돌아와서는 앞유리가 뿌예서 워셔액을 뿌렸더니 시커먼 구정물이 흐르더라고 했다. 아내도 나도 그저 구정물에 대해 재미있어했을 뿐 세차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 세차를 할까? 이 기회에 지나온 나의 세차 연대기를 되돌아보며 곰곰이 생각해보았으나 딱히 세차를 하는 주기나 동기가 발견되진 않는다. 그런 것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보다는 좀 더 자주 세차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현실은 아마도 버티고 버티다가 이제 더는 못 견디겠다 싶으면 세차를 하게 되는 것 같다. 문제는 아무래도 차는 바깥으로 돌아다니거나 주차장에 서있어야 하는 물건이니 필연적으로 계속해서 먼지가 앉고 더러워질 수밖에 없어 가만히 두어도 세차를 해야 할 때가 온다는 점인데 그 와중에 다행스럽게도 자연의 힘으로 차가 깨끗해지는 경우가 간혹 생기곤 한다. 주로 여름날 강한 장대비를 어느 정도 시간 동안 맞는 경우 비가 그치고 나면 차가 멀끔해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때도 섬세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물자국이 남았다며 다시 세차를 하기도 하던데 나는 시각이 섬세하지 않아 그냥 뿌옇던 차가 조금이라도 쨍해진 것 같고 유리가 깨끗해져서 시야가 좋아지니 마냥 좋기만 하다. 자연의 자정작용에 감사할 뿐이다.
오늘 씻긴 녀석은 작년 가을에 아내와 함께 남해에 가서 한 달여를 지내다 왔고, 이후에도 처가에 갈 때, 시가에 갈 때, 아내와 함께 스키장에 갈 때 우리와 함께 다니면서 벌써 주행거리 1만 킬로미터를 거의 채워가고 있다. 그런데도 그동안 한 번도 씻기지 않았다. 간혹 유리에 때가 너무 끼어서 운전에 방해가 될 때가 있는데 그런 때에도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운전을 한다. 반면에 나는 시야가 답답해지는 것은 못 견디는 편이라 유리가 너무 더러울 때는 실리콘으로 된 유리 닦는 도구와 유리용 세제를 사용해서 운전에 방해가 되는 부분만 깨끗이 닦아낸다. 그런 날은 유리의 일부분만 맑고 투명해진 조금 기이한 차가 되어 버린다. 이번에는 어느 날부턴가 지하주차장에서 우리 차만 너무 더러워서 눈에 확 띄는 느낌이 들면서 물자국 비슷한 얼룩이 너무 심하게 앉아서 이러다가 차가 아예 호피무늬로 변해 버릴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고 결정적으로 아내가 어느 날 집에 돌아와 차를 타고 내릴 때 옷에 닿지 않게 아주 조심해야 하는데 주차장에 좁은 자리밖에 남지 않아서 힘들었고 급기야 후방카메라 렌즈에도 때가 끼어서 화면이 뿌옇기만 할 뿐 후방이 거의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고 말해서 세차를 결심하게 되었다.
세차를 자주 하지 않으니 단골 세차장이 있을 리는 만무하지만 그동안은 그래도 거의 한 곳만 꾸준히 갔다. 그래 봐야 1년에 한두 번도 채 가지 않으니 단골이라고 할 순 없고 그냥 언젠가 우연히 갔던 곳인데 집에서 가깝고 가격도 괜찮고 해서 계속 그곳만 가게 되었다. 세차의 질은 깔끔하게 잘해주는 것 같은데 세차장에 갈 정도가 되면 워낙 청결 상태가 불량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깔끔하게 잘해주는 것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오늘도 세차를 하려 집을 나서서는 망설임 없이 그 세차장으로 향했다. 세차장에 들어가니 영업을 하지 않는지 썰렁하다. 사무실 입구에 가보니 개인 사정으로 당분간 휴업하노라고 문에 붙여 두었다. 모처럼만에 왔는데 휴업이라니. 헛걸음에 속이 상하고 다른 세차장 아는 곳이 없으니 어째야 하나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다음 기회를 도모할까 여러 가지 생각이 겹쳐지면서 세차장 사장님의 개인 사정은 무엇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휴무도 아니고 휴업이니 문을 닫는 기간이 꽤 길어지는 것 같고, 그저 개인 사정이라 적어놓은 것을 보니 기뻐할 만한 일은 아닐 것 같아 은근히 걱정이 된다. 코로나에 감염되어 어쩔 수 없이 문을 닫아야 한다면 기간을 정해서 휴무 공지를 할터이니 코로나 때문도 아닌 것 같다. 오지랖은 이 정도로 하고 어찌어찌 검색을 해서 다른 세차장을 찾아가 세차를 맡겼다. 와서 보니 이 세차장도 아주 예전에 한 번 왔던 곳이다. 그 이후에 왜 안 오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휴업을 한 그 세차장보다 집에서 조금 더 멀고, 가격도 조금 더 비싸지 않았을까 싶다. 세차를 맡겨두고 대기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세차를 자주 하지 않고 세차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사는 나도 한번 세차를 하면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아마 오랜만에 해서 더 기분이 좋을 수도 있겠다. 말끔해진 차의 외관과 허옇게 쌓여가던 실내의 먼지가 사라진, 컵홀더와 기어 박스에 널브러져 있던 과자 부스러기와 커피 자국이 사라진 산뜻해진 차에 오르며 이거 우리 차 맞아? 하는 어색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면서 평소에 신경도 쓰지 않던 차의 위생상태에 대해 한 시간 정도 굉장히 예민하게 신경을 쓴다. 오랜만에 한 세차이니 그 결과를 온전히 최대한 길게 즐겨보고 싶은 마음이다. 집에 돌아와서는 보닛에 앉은 티끌도 털어내고 혹여 유리를 내리면서 물자국이라도 생겼다면 걸레로 깨끗이 닦아낸다. 앉았던 자리에도 내가 뭔가 흘리진 않았는지 다시 보고 털어낸다. 하지만 그 효력은 길어야 한 시간이다. 차의 위생에 더 오랜 시간을 신경 써 주기에는 내가 너무 게으르다.
오랜만에, 아니 이차는 처음 한 세차이니 기대가 꽤나 컸지만 이번 세차는 솔직히 만족스럽지 않았다. 세차장이 실내에 있어서 차를 인도받아 나올 때까지 느끼지 못했는데 야외로 나오자마자 앞 대시보드 위에 허옇게 쌓인 먼지가 눈에 들어온다. 다른 곳을 둘러보니 모두 깨끗이 청소되어 있는데 유독 대시보드 위는 손을 댄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짐작건데 실수로 그곳 청소를 빼먹은 것 같다. 세차할 차가 꽤 밀려 있었을 정도로 세차장이 바빴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1년에 한 번 느낄까 말까 한 세차의 기쁨을 운전석에 앉으면 가장 먼저 보이는 대시보드의 먼지에게 빼앗겨 버리니 아쉽기만 하다. 깨끗해진 차를 기대하고 있을 아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걸레와 유리 세제로 대시보드의 먼지를 닦아내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차를 다시 둘러보니 깨끗하고 멋지다. 우리 차가 꽤 잘생긴 녀석이었구나 싶으면서 자주 좀 씻겨줘 볼까 생각이 든다. 물론 부질없는 생각이다. 이제 곧 이 녀석은 다시 먼지가 뿌옇게 쌓인 우리 차다운 차가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세차 좀 하라고 핀잔을 주면 나는 늘 해오던 그 대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차 모시고 사나?
그래도 오늘은 세차를 했으니 이 산뜻한 기분을 조금 더 즐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