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를 멈춘 지 한 달하고도 2주가 지났다. 예전 같으면 한 달이 아니라 일 년을 라켓 한번 안 잡고 지나가도 별일 없을 테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미 내 몸이 기억하는 매일의 루틴이 탁구였다. 무릎을 다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아픈 것 이상으로 몸이 쑤셔오더니 이제는 온몸이 석고처럼 굳어가고 있었다. 지루함에 서서히 질식당해 정신도 희미해지고, 손까지 떨려오는 듯했다. 탁구장에서 늘 보던 사람들도 못 만나니 마음 한구석도 허전했다. 시간은 많아졌지만 재미있는 책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고 책을 읽다가도 생각은 어느새 시공간을 초월한 어딘가를 정처 없이 누비고 있었다. 다치기 전이였다면, 운동으로 흠뻑 땀을 쏟아내고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살을 맞으며 개운함을 만끽하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오래된 추억처럼 땀에 젖은 기억만 더듬고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계단을 몸으로 굴렀다. 양쪽 무릎 상처만 나으면 훌훌 털고 탁구장에 갈 수 있을 줄 알았건만 현실은 달랐다. 앞으로도 3주간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사 소견이다. 이제 겨우 한 주가 지났다. 2주를 더 버터야 하는데 하루가 일 년 같다는 말이 더는 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운동량이 줄면 먹는 양을 좀 줄여야 하건만, 먹성은 좋아서 내 몸은 자꾸 무거워지고 있었다. 하늘에 구름은 몽실몽실 균형이 없어도 앙증맞고 귀여운데, 이곳저곳 살이 붙어 균형 없어진 실루엣은 내가 보기도 민망해졌다.
‘살살 서브 연습이라도 해볼까, 서브는 무릎을 많이 쓰는 건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무릎을 보니 피멍도 다 사라졌고, 상처에 앉은 딱지도 없어져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어 보였다. 약간의 통증이야 참으면 될 터였다. ‘그래! 좋아, 주문한 무릎 보호대도 도착했고 주말에 탁구장에 가보자.’ 벌써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친한 회원들 카톡방에 글을 남겼다. ‘이번 주말 탁구장 가려고요. 서브 연습은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더는 못 참겠어요’
카톡 확인 숫자가 하나씩 사라지면서 글이 올라왔다. “나도 갈게, 그 시간에 무조건 일정 맞출 거야” “아이 데리고 저도 갈게요. 주말 연습 언니 없으니까 잘 안됐어요. 드디어 연습하는 건가요” 툭 던진 한마디에 모두가 기다렸다는 답을 했다. 활기가 넘쳤다. 지난번 오름부 회원의 말이 떠올랐다. “너 없으니까, 탁구장 잘 안 가지네. 빨리 회복해서 탁구장 나왔으면 좋겠다.” “너 없으니까 탁구장이 조용하다. 같이 칠 사람도 없고” 인사말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사람들은 탁구 잘 치는 사람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함께 경험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의 에너지가 그들에게 스며들었나 보다.
지난 6월 제주도 생활 탁구 대회에서 개인전 예선탈락을 했다. 다시 열심히 해보자며 ‘으싸으싸’ 했건만, 뜻하지 않은 관장의 기습 펀치에 마음에 금이 갔다. 캄캄한 밤이었다. 며칠 후 계단에서 구르면서 무릎마저 다쳤다. 조명이 꺼진 터널 한가운데 있는듯했다. 방향도 알 수 없는 캄캄한 터널. 손에서 탁구라켓만 놓아버리면 빛이 보일 거 같았다. ‘놓아버릴까, 에잇! 이게 뭐라고.’ 가정도, 직장도, 친구도 아닌 취미생활 때문에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져 금이 간다면 그것이 내가 원한 취미일까. 암흑의 시간이 내게 건넨 건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질문이었다.
무릎이 치료되는 사이, 나는 무사히 터널 밖으로 나왔다. 나를 세상으로 이끈 건 탁구라켓과 맞바꾼 빛이 아니었다.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사람들이 내게 보내준 작은 불빛이었다. “회복 잘하고 계시는가요, 건강하게 탁구장에서 봐요”, “무릎은 어떠니, 조급해하지마, 다시 시작하면 돼”, “좋아하는 책도 읽고 힐링 시간 가져요”, “치료 잘 받으시고, 컴백하는 날 기다릴게요”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탁구. 나의 답은 ‘나는 탁구가 좋다’ 다.
그들에게 스며든 에너지보다 더 큰 에너지를 나는 받고 있었다. 사람으로 금 간 마음이 사람 덕분에 붙었고, 단단해졌다. 마음속에선 파이팅이 꿈틀꿈틀 일어나는 듯했다. 마음과 몸이 연결되어 있다고 했던가. 벌써 무릎이 가벼워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