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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밀도는 공평하지 않다

by 새라

학창 시절 나의 10분은 그야말로 환상의 시간이었다. 후다닥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은 기본이고 본관 건물 동쪽 끝에 나 홀로 지어진 매점까지 100m를 20초에도 못 뛰는 내가 전력 질주로 달려가 먹거리를 사 왔고, 미처 못한 숙제를 공책 한 바닥 적어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여유 있는 점심시간을 위해 일찌감치 도시락을 까먹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침 자율학습 시간부터 야간 자율학습 시간까지 통제된 시간 사이에 있는 ‘10분’은 뭐든 마음만 먹으면 학교 안에서 다 할 수 있었다. 쉬는 시간 10분에 마지막 1초까지 꽉 차게 쓴 나는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기 직전까지 아슬아슬 모든 것을 끝내고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가쁜 숨을 가다듬으며 자리에 앉아 책을 펴곤 했다.


대학에 들어가 성인이 되어서의 시간은 학창 시절과 비길 수 없는 자유로움이었다. 얽매일 것도 시간을 내줄 것도 없는 내 시간. 달라진 게 있다면 10분으로 쪼갤 시간은 많아졌지만, 그 많은 조각 중에서 학창 시절 10분의 위력을 느낄 만한 것은 없었다. 내 시간은 엿가락처럼 느슨해졌고 무언가를 하려면 늘 시간이 부족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 시간이라고 했던가. 심지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갖은 시간도 공평한데,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의 밀도에 과연 시간이 균등하게 흘러가는지 의문이 생긴다.


그런데 그렇게 쉬이 지나가는 10분을 최대로 사용할 때가 내게도 있다. 바로 탁구 경기다. 탁구는 11점을 먼저 가면 이긴다. 대개 5판 3승으로 경기가 진행되는데 초보자에게 10분은 참으로 긴 시간이다. 구기 종목에서 제일 가벼운 탁구공은 타격하면 0.2초 만에 상대 테이블로 들어간다. 2초가 아니고 0.2초다. 고정된 시간은 아니지만 대략 그렇다 보니 1분에 몇 점이 왔다 갔다 하는 건 순식간이다. 눈을 부릅뜨고 초집중 모드로 경기에 임해도 모든 것이 훅 지나간다. 아인슈타인이 뭐라 해도 나에게 탁구공의 속도는 빛의 속도다. 탁구의 10분은 가히 학창 시절 10분과 견줄 만하다.


연일 경북을 초토화한 괴물 산불 소식이 온 매체를 도배했다. 의성, 안동, 청송, 영양, 영덕, 산청·하동 등에서 역대 최대규모의 피해가 발생했다. 현재까지 30명이 사망했고, 피해면적도 서울 여의도의 166배 달하는 규모라고 한다. 태풍급 바람으로 퍼진 화마에 집을 잃고, 산불을 피해 대피한 이재민도 6천 명이 넘는다. 미처 대피하지 못해 사망하는 안타까운 소식도 계속 나온다. 그들에게 10분은 생사를 가르는 긴박하고도 숨 막힌 순간이었으리라. 재난영화의 한 장면처럼 엄청난 바람과 함께 휩쓰는 화마 앞에 나약한 인간이었을 것이다.


최근 읽은 유대인 학살로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가 쓴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에 나온 말이다.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다. 아니, 이미 죽기 시작했다. 기상과 노동 사이에 여유시간이 10분 밖에 없다면, 나는 그 시간을 다른 데 쓰고 싶다.’ 언제 가스실에서 사라질지 모르는, 지독한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버티다, 비로소 생존자가 되었을 때 그는 수용소에서의 삶을 기록했다. 괴물 산불의 검은 연기와 뜨거운 불바람에 휩싸인 예측불허 죽음의 순간과 수용소에서 죽음을 목전에 둔 10분의 상황이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나에게 삶의 마지막 10분이 주어진다면, 숨을 곳도 도망갈 수도 없는 막다른 길에서의 10분이 주어진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더는 내가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됐을 때, 나의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하고 맑아질 것이다. 아쉬운 것들,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도 남겠지만, 눈을 감으면 그런 것을 한 번에 덮어버릴 강력한 감사의 마음이 나를 지배할 것이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가족, 고마운 사람들, 행복했던 기억과 감사함이 나의 10분을 풍성하게 채울 거 같다. 생각의 시간은 진정 빛의 속도로 머릿속에서 꼬리를 물며 나의 아주 어린 시절까지도 다녀올 수 있다. 파노라마처럼 내 삶의 영화가 흐르는 동안 나의 마지막 10분은 내가 가진 추억을 꺼내 보는 것만으로도 꽉 찰 것이다. 늘 마음에 새기는 ‘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라는 이어령 선생의 말씀처럼 살아온 생을 감사하며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거 같다. 우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시간의 길이도 밀도도 조절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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