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과 거래 사이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때때로 법 너머에 손을 내미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연민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범죄라 했다.
하지만 그 경계에서 ‘살아낸’ 사람들은 말한다.
“그건 생존이었다”고.
이 이야기는 그런 생존의 풍경 속에서,
누가 ‘돕는 자’였고 누가 ‘팔아넘긴 자’였는지를
매번 묻고 또 되묻는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
성우는 기억한다.
작고 더럽혀진 트렁크 안, 손발이 꽉 묶인 채로 목을 웅크리고 있던 자신의 몸, 숨을 들이쉴 때마다 금속과 비닐 냄새가 폐를 타고 내려오던 그 순간. 어두컴컴한 트렁크는 금방이라도 질식사할 것 같은 폐쇄 공간이었고, 그 안에서는 ‘성우’라는 이름도 허락되지 않았다.
“넘버 세븐.”
트렁크에 실린 여덟 명 중 일곱 번째.
그게 그날 그의 이름이었다.
그를 그렇게 데려온 사람은 아버지 병태였다.
단지 ‘함께 살기 위해서’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많은 것들이, 그 짧은 여정 안에 담겨 있었다. 병태는 늘 말했다.
“다 너 잘되라고 한 거야.”
하지만 성우는 안다. 그 말 뒤에는 분명히 후회와 자책, 그리고 어쩔 수 없음이 있었다는 것을. 아버지는 눈앞에 보이는 출구 하나에 모든 걸 걸었다. 국경을 넘고, 브로커에게 돈을 쥐여주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어느 저녁, 병태는 뉴스를 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엘에이에서 브로커 하나 잡혔대. 교회에서 서류 도와준대놓고 전부 가짜. 허위 결혼도 알선하고, 영주권 대필까지 했다더라.”
성우는 말없이 식탁 위 물컵을 들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국경을 넘던 날. 그들도 교회 옆 골목에서 만났었다. 건물 뒤편 어두운 방, 책상 위에 놓인 커피잔과 손때 묻은 성경책, 얼굴 반쯤 가린 남자. 병태는 거기서 봉투를 건넸다. 정확한 금액은 말해주지 않았다.
“걱정 마세요. 다들 이렇게 옵니다.”
그 브로커는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었다.
마치 불법도 일상이고, 범죄도 생계의 일부인 것처럼. 성우는 지금도 그 말을 잊지 못한다.
그 후로 병태는 더 조심스러워졌다.
단속 차량이 골목에 세워지면 그는 먼저 눈빛이 변했다. 그 눈빛은 마치 동물적인 감각처럼 주변의 위험을 재고 있었다. 교회 앞에 멈춘 SUV, 마켓 주차장의 경찰, 길 건너 어린이집 앞에 선 무표정한 이방인. 그 모든 장면이 병태를 긴장하게 했다.
이제 단속은 국경에만 있지 않다.
ICE는 LA 한인타운까지 올라왔고, 이미 이민세관단속국은 마켓, 학원, 심지어 미용실까지 드나들기 시작했다. 제시카가 일하던 네일숍 옆 마트에서 두 사람이 잡혀갔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성우는 알고 있다.
그 ‘소문’은 언제든 자신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제시카는 말했다.
“당신들끼리 너무 조용해. 다들 무너지고 있는데 아무도 말 안 해.”
미국인 남편과 이혼한 후, 병태와 성우를 받아들였던 그녀는 그렇게 덧붙였다.
“나는 남편 하나 잃었지만, 너흰 나라 하나를 잃은 거잖아.”
처음에는 마음을 주지 않던 성우도 이제는 그녀를 ‘엄마’라고 부른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늘 불안이 웅크리고 있다.
이 가족이, 이 삶이, 누군가의 신고 하나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예감. 누군가의 ‘도와주겠다’는 말이, 결국엔 팔아넘기기 위한 입구였다는 걸, 그는 몸으로 배워야 했다.
국경을 넘던 날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덜컹이던 트렁크,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차의 진동, 앞자리에서 들려오던 라디오.
브로커는 그때도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다들 이렇게 살아.”
그 말은 아직도 성우의 귓가에 남아 있다.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관습처럼 반복되고 있었다.
지금도 누군가는 그 말을 듣고 있다.
누군가는 교회 뒤편에서 가짜 서류를 만들고,
누군가는 아이를 트렁크에 숨기고,
누군가는 남편 없이도 결혼 서류를 꾸민다.
그리고 그 모든 걸 돕는 사람들은, 자신을 ‘선한 이웃’이라 부른다.
법의 바깥에서 삶을 꾸리는 이들에게, 그들은 때로 구원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또 하나의 착취자이기도 하다.
병태는 지금도 말한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 그냥 같이 살고 싶었을 뿐인데.”
성우는 그런 아버지를 안쓰럽게 바라본다.
그는 이제 이해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무엇이든 감내하려 했고,
그 ‘감내’가 바로 이민자 가족이 살아남기 위해 치른 대가였음을.
이 글은 그렇게 살아낸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도움인지 범죄인지조차 헷갈리는 모호한 경계 위에서, 누군가는 가족을 구하려고, 누군가는 나라를 바꾸려고, 그리고 누군가는 이름 하나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들의 이름은 다 기억되지 않겠지만,
그들이 지나간 흔적은 누군가의 심장에 남는다.
그 흔적을 따라, 우리는 투명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다시 되짚는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으로, 특정 인물이나 사실을 단정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