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를 일주일 먹는데도 여전하다.
물론 2박 3일간의 여행을 감기와 함께 시작한 탓도 있지만, 보통 사나흘이면 사라지는 감기가 쉬이 낫질 않는다. 오늘 목욕탕에 들러 체중을 쟀더니 근 30년 만에 처음 69kg대를 찍었다.
외국에서는 감기에 항생제 처방은 매우 드물다고 하던데 우리나라는 감기에 걸렸다 하면 초반부터 항생제 투여가 노멀이다. 이 항생제라는 게 금세 좋아짐을 체감하기에 '빨리빨리 한국인'은 이 항생제를 결코 놓지 못하는 것 같다.
여행 가서 아플까 봐 약을 처방받고 떠났는데 노는 것도 육체노동이라 계속 쉬지 않고 돌아다녔더니 이번 감기는 쉽게 낫질 않는다.
사람은 아프면 쉬어야 한다.
아무리 약을 먹는다 해도 사람이 아프면 쉬는 게 당연한데 대개의 현실은 그러질 못한다. 어떻게든 약 한 움큼 입에 털어 넣고 '일해야' 한다.
아마도 의사가 해열제 정도만 처방하고 물 많이 마시고 다 나을 때까지 충분히 쉬라고 한다면 그 병원은 망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맵단짠이 확실한 식당이 맛집이라 여겨지듯, 화끈하게 처방해서 증상을 확 가라앉혀주는 병원이 인기다.
만약 이런 휴식처방을 잘 따르는 환자가 학생이라면 잦은 장기결석으로 성적에 타격이 있고, 직장인은 회사의 눈치가 이만저만 아닐 테고, 자영업자는 생존이 불투명해질 것이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다모에서 이서진의 애절한 명대사지만, 현실에서는 '아프냐'는 말 앞에 "너만"이라는 말이 빠졌다. 그리고 애달픈 눈빛 말고, 싸늘한 시선이 대신한다.
"너만 아프냐?"
"나도 아프다."
어떤 야구선수는 부상당하고 치료받지 않고 진통제로 버티다가 결국 선수생명이 짧아졌다고 한다. 부상으로 자리를 비우면 주전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도 한몫을 했고, 동료와 코치 등의 '너만 아프냐'는 말에 참고 뛴 대가가 그렇다고 한다.
지역 변호사 중에서 제일 많이 번다는 학교 선배는 자신의 직업이 (잦은 술자리 때문에) '간을 내주고, 돈 버는 직업'이라고 말한다. 토끼와 거북이도 아니고 얼마나 대단한 용왕을 구하려고 자신의 간을 내어주려는 걸까?
사람의 몸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몸을 내주고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몸 고치(면서 스트레스받고 걱정이나 하)다 죽을 바에야 애초에 몸을 내주지 않는 게 더 슬기롭지 않을까 싶다는 게 요즘 생각이다. (말년에 아파봤자, 어깨동무하던 놈들 다 떠나고 혼자만 우두커니 아프다고 그 많은 자연인 아저씨들이 이야기했다.)
인슐린은 나오는 양이 정해져 있다.
다 써버리면 결국 당뇨가 찾아온다.
다른 기관도 마찬가지다.
지금 눈앞의 것은 또 바뀌거나 사라지고, 주변인은 끊임없이 오고 떠나지만, 나라는 몸뚱이는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소중한 자산인데 가장 홀대한다는 건 참 어리석은 일이다.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할 것처럼 착각하면 안 될 것 같다.
물론 먹고사니즘 역시 중요한 일이기에 아예 제처 둘 순 없다. 그래도 언제나 나를 우선에 두는 판단 기준을 지키는 건 매우 중요하다.
굳이 없어도 되는 것이나 이유 없이 비싼 것을 선택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 스스로를 얼마든지 아끼고 존중할 수 있다. 모든 노동소득자는 자신의 몸과 마음과 시간을 내줘야만 물건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뭐가 더 비싸고 가치 있을까? 비교나 될까?
힘든 하루를 잊으려 진통제 같은 술이나 담배 따위를 여유나 낭만이라 착각하는 짓만 하지 않아도 삶의 질은 월등히 좋아진다. 일이 힘들다, 돈이 없다 하면서 이런 데는 돈 쓰는 것도 웃긴다.
'힘들게 일했는데 이런 보상도 없으면..어쩌구.'
그게 무슨 보상인가.
작은 돈으로 자기를 비싸게 학대하는 길이다.
뭐 그것도 개인의 선택이지만.
윗집 부부는 아침 6시 30분이 되면 두뚜 뚜뚜 두뚜 뚜뚜 알람소리와 함께 일어나 '굳이(시끄럽게)' 둘 다 안방 화장실에서 쉬하고, 샤워하고 출근한다.(잘들린다.) 아침 달리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 아파트 출구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길게 줄을 서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곤 한다.
애쓴다.
매일 밤 11시 반쯤 샤워하고 12시 30분에 쉬하고 자던데.
하루 6시간 밖에 안 잔다.
(그래서 그들의 싸이클에 내가 휘말릴 때가 있다.)
아파트 단지 근처 로터리에서 니가 먼저냐, 내가 먼저다라는 경적소리가 오가며 출근 전쟁이 시작된다. 각자 아파트라는 수억짜리 닭장에서 자고 일어나 길을 떠나는 모두들 분주하다.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며 운전하는 여자, 담배를 깨물고 눈감은 듯 찌푸린 인상으로 운전하는 남자. 젖은 미역줄기 머리 그대로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가는 여자. ㄱ자로 고개를 꺾고 폰을 보며 가는 남자.
모두들 자기 앞도 제대로 보지 않는다.
예전에는 남들 출근하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운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취준생 때 부러웠고, 퇴사하고 부러웠고, 마지막으로 사업 초반에 남들 쉴 때 일하고 남들 잘 때 퇴근하던 그 시절에도 그랬다.
'남들처럼'이라는 말
생계수단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점들에서도 '남들처럼' 카테고리 밖에서 무소속에 가까운 삶을 산다. 살아보니 양 떼 몰리듯 '남들처럼' 떠밀려 살지 않아도 꽤 괜찮다는 걸 느낀다. 일이든, 인간관계든 뭐든 간에.
하루 서너 시간이지만 아직 일을 하고 있다.
그래도 아프면 휴식을 원하는 만큼 선택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가 있으면 좋겠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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