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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Nov 02. 2024

너는 어느 절에서 왔니?

   스님들은 공양을 잡숫고 빈 그릇을 물로 깨끗이 정리해드신다. 나는 그렇게 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콩나물밥을 먹을 때만큼은 이렇게 깔끔하게 먹곤 한다. 5,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도 건강하고 푸짐한 채소밥상을 먹을 수 있으니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다.


몇 달 전에 찍어둔 사진

   "여기 앉자."

   식사를 하던 중에도 손님들은 계속 들어왔고 마침 자리가 없자 기다리던 아주머니 손님 두 분은 나의 테이블 빈자리에 양해를 구하지 않고 앉았다.


   "아이, 죄송해요."

   뒤따라 앉은 손님이 나에게 조심스레 미안하다고 말을 건넸다. 나는 말없이 조용히 웃으며 그러시라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늘 그렇듯 그릇을 싹싹 비우며 먹고 있는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그 손님이 조용하지만 모두에게 들리는 소리로 나에게 질문했다.


   "저기, 스님이세요?"


   킹 받는 건 그분의 말투가 꽤 공손했다는 거다.

   마치 정말로 스님께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도 그럴게 키가 크고, 마른 데다, 얼굴 허옇고, 검은테 안경을 쓴 데다 결정적으로 머리가 스님처럼 빡빡 밀려있으니 그도 그럴 것이다. 아무런 무늬 없는 진남색 점퍼에 검정바지, 검정 신발을 신었으니 승복을 잠시 벗어두고 출타한 스님 같아 보였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 아닙니다."

   "아니, 음식을 하나 남김없이 깨끗하게 드셔서..."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웃으며 아니라고 답하고 밥그릇의 몇 개 남은 밥풀들을 입으로 밀어 넣고 조용히 나왔다. 와이프에게 연락해서 있었던 일을 말하고 한바탕 웃어넘겼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오후에 뜨끈하게 샤브샤브 한판 하러 목욕탕에 갔다. 평소와 같이 전신욕을 즐기며 몸을 한껏 지지고 나오는 길에 평소처럼 카운터 할아버지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밖을 나서려는데, 생전 말을 걸지도 않던 그분이 오늘따라 말을 걸었다.


   "어느 절에 계슈?"

   "예???"

   "어느 절에 계시냐고."

   "예?????"


   오래 다녔지만 말한 번 나눈 적 없는 사이라 농담일리 없었다. 당연히 궁금해서 질문하는 눈치였다.


   무슨 날인가?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이 목욕탕에 가끔 오시던 젊은 스님들하고 내 모습이 어느새 비슷해져 있음을 느꼈다. 그도 그런 게 내 생활이 처자식이 있고, 고기를 먹는 것을 제외하고 크게 다를 바가 없기도 하다.


   머리를 0.8mm로 민지 벌써 몇 년 째인데, 갑자기 이런 질문들을 듣기 시작하다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절제된 삶으로 인해 어느새 나의 기운이 맑아졌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목욕탕에서 돌아와 책을 읽으러 사무실 근처 카페에 가는 길이었다. 가는 길에 예전 거래처 A 사장을 우연히 마주쳤는데 아니 글쎄 날더러 이렇게 물었다.


   "아직 사업하시는 거죠?"


   아직 사업하냐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사업하는 사람처럼 안 보이나? 이제 일 안 하고 공부(?)하냐는 건가. 참 ㅋㅋㅋ


   이게 다 하루에 벌어진 일이다.

   아니 4시간 안에 벌어진 일이다. 어쩜 갑자기 이럴 수 있을까? 최근에 어떤 일로 인해  어쩌면 평생토록 마음 깊이 단단하게 심어져 있던 하나의 어리석음이 쑥 뽑혀나간 일이 있었는데 혹시 그게 표시가 나는 걸까?



   하긴 예전에 차를 가지고 절에 간 적이 있는데 입구 통제소에서 내가 운전석 차창을 내리니 관리 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는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바리케이드를 열어줬다. ㅋㅋ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식당에서 그 손님에게 나는 스님 아니라고 하지 말고, 가만히 웃으며 합장하고 일어설 걸 그랬다.


https://brunch.co.kr/@jaemist/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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