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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스트 Dec 19. 2024

어떻게 12점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기말고사

   "ㅎㅎ 수학 12점이에요."


   시험이 끝난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와이프와 나는 한바탕 웃었고 곧 집에 돌아올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삑삑삑!~~ 삑, 띠리리!" 현관문이 열리고 아들이 들어왔다.


  "어무이 아부지, 기쁜 소식임돠."


   아들은 현관문을  들어오자 말자, 소리쳤다.

   이 녀석 분명 방금 전 전화에는 수학 12점 맞았다고 했는데 뭐가 기쁜 소식인 걸까? 와이프와 나는 눈이 똥그래졌다.


   "내가 주호보다 수학 1점 더 맞았지요.ㅋㅋ"


   단짝친구보다 1점 더 높다며 해맑게 웃는다.

   고만고만한 녀석들끼리 매사 투닥대며 노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으이구ㅋㅋ 와이프와 나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그럼에도 입시학원에는 보내지 않는다.

   본인이 스스로 갈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내일 시험이어도 시험공부가 좀 덜 되었어도 아들은 매일 밤 10시에 규칙적으로 잔다. 필요하면 깨어있는 시간에 더 집중하는 법을 알아야 하므로 소중한 잠까지 줄이지 않는다.


https://x.com/RealChickenBoy9/status/1868908240509296888


   과거의 질서는 미래의 기술로 무너지고 있다.

   고소득 전문직부터 그 높은 아성이 무너지고 있다. 실력 있는 시니어급들은 AI툴을 장착해 혼자서 일당백을 해나가고 있고, 또 그런 사람들만 살아남는다. 그래서 신입이나 주니어의 수요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곧 그 시니어급들도 누적된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다 내어주면 그 역시 점점 사라질 것이다.


   그 직업이 아예 없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전보다 소수로 충분하기에 수요는 분명 줄어든다. 학계의 정설(?)로 믿어져 왔던 ROI(Return On Investment)가 이제는 안 나온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세상은 그리로 흘러간다.

  이제는 사람들은 막연히 서로를 필요하기보다(구 시대적 인맥보다) AI를 잘 다루는(일당백을 하는) 사람들의 존재감이 계속 커질 뿐이다.


   그래서 관계에 기대거나 그 관계를 대표하는 학벌의 힘은 점점 약화된다. 마치 야구선수가 대졸이든 고졸이든 실제 타율과 방어율 등과 같은 숫자만이 선수로서 존재하는 이유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과목과 전공별로 칸막이 쳐있던 지식, 그래도 그것을 융합하는 역할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AI가 추월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앞으로 인간의 소용이 무엇인가를 자꾸만 의심하게 된다.


   왜 자식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입시로 대변되는 '일단 선착순' 구조 역시 불투명하다.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그리고 관성대로 다들 달리니까 너도 일단 달리라고는 못하겠다. 부모의 낡은 생각에 아이가 가고 있는 길로부터 멀리 보내버리는 건 아닌가 싶어서다. (시간이 걸려서 그렇지 결국 자기 자리 찾아간다.)


   세상이 인정하는 좋은 대학 안 나와도, 대기업 아니어도, 사짜 라이센스 없어도, 물려받은 재산 없어도, 상급지 안 살아도, 나는 심지어 꼴찌를 해봤어도 여전히 멀쩡히 살아가고 있기에 오히려 자식한테 빨리 가서 줄 서라고도 못하겠다.


   누구는 공부 때문에 게임을 못하게(적게) 한다지만 우리 부부는 아이가 다른 재미있는 활동도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해서 게임을 주 3일(화/토/일) 각각 1시간씩으로 제한한다. 유튜브도 하루에 딱 30분만 본다.


   대신 책도 읽고, 만화도 읽고, 오디오북도 듣고, 그림도 그리고, 여전히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도 한다. 주말에는 새로운 곳을 찾아 멀든 가깝든 당일 여행을 가거나 새로운 맛집을 찾아다닌다.


   아들은 승마를 오래 했고, 지난여름에는 한 달간 연기도 배웠다. 그리고 요즘엔 컴퓨터와 드럼 학원에 다닌다.


꽤 멀었지만 너무나 좋았던 주왕산


   "넌 커서 뭐가 될래?"


   직업으로 한 사람을 한정 짓는 거 같아서 이런 질문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무의식 중에 입에서 나와도 서둘러 주워 담는다.


   음, 아들은 나중에 뭐가 될까?

   뭘 뭐가 되겠나?

   뭐가 되었든 자기 자신이 되었으면 한다.

   남이 아닌 자기 인생을 사는 사람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자기가 누군지를 알아야 거기에 맞는 직업도 또 자기가 좋아하는 여가활동도 찾지 않을까? 남들이 간다고, 언제까지 뭘 어떻게 해야한다는 통념에 내몰리지 않도록 균형 잡힌 환경을 가꿔주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 아닌가 싶다.


https://brunch.co.kr/@jaemist/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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