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는 잠옷 겸 집옷으로 입고 있는 흰 티 목둘레가 구멍이 난 줄도 모르고 입고 있다. 그게 재미있어서 사진을 찍겠다고 가만히 있어보라 했다.
흰색 반팔티는 겉옷 안에 받쳐 입는 것으로 역할을 시작한다. 그러다 색이 좀 바래거나 낡아 보이기 시작하면 이렇게 잠옷 겸 집옷으로 좌천(?)된다. 그런데 사실 자주 입는 후드티 안에 입으면 별 표시가 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입는다. (와이프에게 걸리면 당장 벗고 멀쩡한 것으로 입어야 하긴 한다.)
사실 좌천이라는 표현은 흰 티에게 좀 미안하다.
흰색 반팔티는 오래 입으면 이렇게 구멍도 나고 낡아 보여서 눈은 싫어할 수 있지만, 내 피부는 무척이나 좋아한다. 닳고 닳아서 제법 부드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낡음이 아무렇지 않은 집안에서는 최고의 옷이기도 하다. 요즘 같은 겨울엔 와이프는 올이 나가고 늘어진 지퍼 가디건을 입고, 나는 보풀이 일어나 좌천된 후리스를 입고 지낸다.
물가가 정말 많이 올랐다.
코로나 이후로 공급망 문제나 돈 풀기 등의 인플레이션 자극 요인으로 물가가 더욱 치솟았다. 물가가 오르지 않은 게 없다. 점점 더 그럴수록 비필수 소비는 더 줄이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올해부터 가족 외식 횟수를 일요일 점심으로 한정하고, 내 영혼의 쉼터 목욕탕도 주 1~2회로 줄였다. 주중에 거의 매일 찾던 단골 까페도 출입을 끊었다. 사무실에서 루카스나인 디카페인 라떼를 마신다. 물론 까페에서 사 먹는 라떼가 훨씬 맛있지만 안 마신 지 2달이 되어가니 그 맛이 기억이 안 난다. 그래 차라리 기억을 지우는 편이 낫겠다. 이미 내 혀는 봉지커피로도 즐거워한다.
차를 캐스퍼 일렉트릭으로 바꾼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유류비로 들어가던 돈이 1/3로 줄었다. 월마다 적게는 20만 원에서 이동거리가 많을 땐 30~40만 원을 절약하고 있다. 내 기준으로 마음껏 타도 8만 원 정도다. 가끔은 함부로 운전하는 차들 때문에 불쾌하거나 위험한 순간이 없진 않지만 뭐 충분히 만족한다.
여전히 같은 옷 2~3벌을 돌려 입는다.
여전히 집에서 삭발하고, 점퍼는 맨날 유니클로 패딩이다. 10년 쓴 다이슨 청소기는 이제 폐활량이 예전 같지 않아 차이슨으로 바꿨다. 가격은 몇 분의 1인데 놀랍도록 성능이 좋다. 아이가 보지 않는 why시리즈 191권은 당근으로 팔아 현금을 챙겼다. 정수기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1년 더 쓰기로 했고, 열심히 집밥을 챙겨 먹고 있다. 3월부터는 점심 도시락도 부활 예정이다.
자발적 궁색함은 묘한 안정감을 준다.
그거 얼마나 한다고 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체크카드 명세서를 보면 강펀치가 아니라 잔잔한 잽들이 쌓여 몇백을 만들기 때문이다. (나는 신용카드가 없다.)
그리고 행여 형편이 어려워진대도 생활의 변화 없이 최대한 그대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은 건재(?)하지만 안 쓰고 산다고, 없어 보인다고 자존감이 하락하는 건 없다. 진짜 자존감은 좋은 습관과 보유 자산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가야
아무리 올라봐라
내가 옷 사 입나 안 사 입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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