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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행열차, 우울증 환자의 사고흐름

by 내담자 Jay Jan 28. 2025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빗물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잊어버린 첫사랑도 흐르네 



마 이게 우울증 환자의 사고 흐름이다.

비가 내리고, 비가 내리니 창문에 빗물이 똑똑 맺혔다 떨어지는데

그걸 보고 있자니 어느새 볼에 눈물이 흐르고 거기서 그치면 될 것을 결국 

지나간 첫사랑까지 소환해서 온몸에 흐르게 하는 것이다. 


나는 언제가 내가 우울한가 아닌가, 내 기본값은 뭔가를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우울증이지만, 늘 우울했지만, 분명히 아닐 때도 있을 텐데 

그럴 때 내 내면은 뭐라고 말하나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한 주제를 가지고 예를 들어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는 

막연한 질문 하나를 나에게 던져보면 대답이 부정적으로 나올 때는 

차라리 지금 죽는 게 낫다는 결론이 나올 정도로 파괴적이다가

긍정적으로 나올 때는 잘되겠지 보다는 "지금 별생각 없는데?"라고 대답하는 나를 보았다.

그러니까 긍정적일 때는 긍정적인 ‘결론’이 나오는 게 아니라 

그보다 ‘없음’(無)이 대답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O' , 'X'가 아니라 그냥 빈칸인 상황.


우울할 때는 마치 감자 캐듯이 우울이 우울을 물고 몰고 우르르르 몰고 나와

거기에 매몰되다가

그렇지 않을 때는 이때다 싶어 내가 앓고 있는 맥 못 추는 문제에 대해 

말을 걸어보면 막대기로 흙바닥 쑤시듯 뭐 하나 딸려 나오는 게 없었다. 

털면 털릴 흙 몇 줌만 겨우 묻어 나올 뿐. 

그 간극에서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 사이의 균형을 좀처럼 잡지 못한 채 괜찮을 때는 “괜찮겠지 뭐” 

하고 낙관하거나 아닐 때는 당장이라도 정신과 응급신청을 할 정도로 

어두운 상태를 반복했다.


이 둘을 이을 다리가 필요했다.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명상에서 반복되는 ‘마음 챙김’ 방법을 나는 무던히도 내 것으로 만들어보려 애썼다.

생각은 생각일 뿐. 생각에 지배되지 말고 그저 지켜볼 것...

생각이 생각일 뿐일 소냐, 더 나아가 허상이라는 그 메시지가

내 근원적인 것에 닿지는 못한 채 겉돌았다.

그게 또 서러웠다. 


왜.. 왜 또 안될까 내가 이렇게 노력하잖아.

마음은 계속해서 결 따라 눕다, 언제라도 다시 일어나 내 목을 졸랐다. 

가교가.. 다리가 필요하단 말이다.

그래야 이렇게 극단적인 내 공습에 매번 당하지 않을 수 있는데 

그래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그래도 하나의 수확은 나는 건강할 때는 정말 건강하구나, 

아무 생각 없이 길을 잘 걸기도 하는구나 라는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나고 우울한 것도 나구나. 

일단은 바구니가 두 개 생긴 것이다. 


분화가 된 것이다. 그 둘 사이에는 여전히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지만

분화된 것을 인지하는 것은 분명 축하할 일이었다. 

너무 힘들 때면 또다시 잊고 내가 언제요? 하며 죽고 싶다고

앞에 있는 사람 멱살을 잡아 흔들고 싶은 건 여전했지만

알고 나면 또 모를 일이다. ‘교량공학’이라도 서점에서 찾아볼지

그게 또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모르는 일이다.


우울증에서 하나 배운 게 있다면

아주 사소한 게 전혀 사소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울증 환자들은 대부분 출발지가 거기고

퀘스트도 그만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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