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삶에서 무수히도 위로를 주고 싶은 순간을 겪는다. 무슨 말로도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아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 입을 떼지 못하는 일이 많다.
그토록 입이 떨어지지 않고, 무슨 말도 꺼내지 못해 몇 번이고 고민한 끝에 아무런 말도 건네지 못하는 순간들, 나는 위로가 서툴다, 그렇게 생각한 나날들.
거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우리는 소중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지 못함에 먼저 서글퍼 하지만, 사실 우리가 위로에 서툴다면 그 이유는 위로받아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위로받아본 사람이라면 안다. 아,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 내 마음에 위안이 되는구나. 또는 그 어떤 말이라도 어떤 형태라도 누군가 애써주는 것이 마음 써 주는 것이 나의 마음을 이렇게 채우는구나. 그런 경험을 하게 되면, 사실 위로의 말은 내용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심스럽게 또는 고민하며 어떤 말로도 위로되지 않을 것 같은 그 느낌을 아는 것처럼, 어렵사리 꺼낸 한마디, 토닥임, 끌어안음, 그런 것들이 모두 위로가 된다는 것을, 받아 본 사람들은 안다.
그렇다면 위로받아본 경험이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위로받을 슬픈 순간들을 공유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내 아픔을 나눈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픔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져 함께 고통스러울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타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사람일수록 타인의 괴로움이 전해지는 상황을 괴로워한 끝에, 같은 상황을 타인에게 겪도록 하기를 꺼린다. 불편함을 만든다 생각하는 것이다.
혹은 그 같은 감정에 내려간 후 다시 올라올 길이 막막한 이들도 있다. 그럴수록 내 감정을 평온하게 유지하는 것만이 안전하다 느끼기에 아픈 이야기를 어려워한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나에게 아픔인 것이 누군가에겐 별일 아닌 것으로 취급될까 두렵기도 하다. 혹은 내 아픔과 괴로움이 누군가에겐 약점을 보이는 것이 될까 두렵기도 하고, 연민의 대상이 될까 피하게 되기도 한다.
이 모든 어려움들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우리는 언제나 힘든 일을 나누는 데에 애를 먹는다. 그래서 위로를 받아보기가 어렵고, 또 그래서 위로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우리는 쉽게 아픔을 숨기도록 성장한다. 화내면 화내지 말라는 울면 울지 말라는 이야기를 먼저 들은 탓이기도 하다. 혹은 화가 나서 슬퍼서 했던 행동들이 나쁜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감정까지도 묶여서 저 깊숙이 묻어두어야 하는 존재로 나도 모르게 생각하기 쉽다.
슬픔에 슬프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린 위로받고 또 위로할 수 있다.
오늘 슬픈 사람들 모두 마음껏 슬퍼해보았으면 한다. 슬픔은 위로할 기회를 주고 위로는 다시 다음 위로가 쉬이 탄생하도록 돕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슬퍼할 때 위로가 서툴러 마음이 아파 본 적 있다면, 오늘 나의 슬픔을 숨기지 말자. 내가 나눌 위로를 위해 오늘 위로를 받자.
내가 네가 될 순 없지만, 대신 아파할 수 없지만 어떻게든 힘이 되고 싶은 그 마음을 받아서, 나의 다음 위로에 녹여내자.
세상이 여러분의 위로로 조금은 포근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