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음은 늘 흘러간다. 시간에 따라 경험에 따라 생각에 따라 계속 파도치고 출렁인다. 우린 그 움직임 위에서 균형을 잡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팔을 뻗고 다리에 힘주고 쓰러지지 않고자 아등바등한다.
그러나 가장 거친 파도를 유연히 지나는 방법은 온몸에 힘을 빼고 물결에 몸을 맡기는 일이다. 저항 없이 애쓰지 않고 그 감정의 물살에 몸을 맡기고 있노라면 나는 진정한 나로서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느끼면 안 돼. 화내면 안 돼. 거절하면 안 돼. 예의가 아니야. 다른 사람들이 욕해.
그 많은 부서진 갑판과 세상의 부표들을 놓아주고 내 몸을 파도에 맡기자. 나는 내 바다에 누워 있는데, 무엇이 두려울까. 내 감정이다. 내 바다다. 그 위에서 눈을 감고 일렁이다 보면, 나를 알아줄 수 있는 깊은 문장이 물방울을 타고 저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온다.
"나 엄청 잘하고 싶었나 보다."
"혼자 고민하느라 외로웠겠네."
"네 잘못처럼 느껴졌구나."
마음과 꼭 일치하는 주파수의 문장을 찾았을 때 우린 마음의 파동을 경험한다. 어떤 날은 왈칵 눈물이 쏟아지기도 하고, 찌르르하고 위와 가슴을 가로지르며 목을 타고 무언가 딸려 올라오는 감각을 느끼기도 한다. 코가 찡해지거나 시려질 수도 있다. 감정이 바깥으로 울컥 쏟아졌다는 느낌에 이내 머쓱한 마음도 밀려온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일어난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줬다는 그 한 문장 만으로.
절로 끄덕임이 나오고, 눈물이 차오르다 보통은 감정을 삼킨다. 그 자리에서 조금 더 감정이 편히 쓸려 나오도록 둘 수 있다면 가장 좋다. 물론 쉽지 않다. '우는 나'를 늘 감추도록 우린 배워 왔기에. 그래서 안전한 곳이 필요하다. 안전한 이의 품에서, 혹은 안전하다 느끼는 장소에서. 혼자라면 그것도 좋다. 내가 나를 토닥여 준다면 충분하다. 모두가 그 문장을 만나고 마음껏 울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러려면 나를 위한 그 문장을 찾는 먼 여정을 떠나야 한다. 처음부터 쉽게 그 단어와 그 말들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아주 처음은 내가 아닌 누군가로부터 듣게 된다. 나도 몰라줬던 내 마음의 문장이 찾아 드러난 순간, 낯선 감각과 눈물에 스스로 당황하게 될 수도 있다.
그 말을 찾아 꺼내준 상대가 담담히 들어준다면 상황은 조금 낫다. 감정에 과하게 동요되지 않는 안전한 상대라면 조금은 편안할 것이다. 당신의 감정에 주파수를 맞춰 뒷걸음치지도, 쑥스러움에 마음을 차단하지도 않을 수 있도록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도움이 된다.
물론 그런 상대는 흔치 않다. 나를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내 감정보다 더 크고 진하게 반응할 수 있다. 반대로 별 사이가 아니라면 그는 내 감정에 너무나 무심해하거나 과하게 당황할 수도 있다. 우린 자꾸만 상대의 반응에 민감하도록 만들어져 왔기에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감정을 펼치고 나면 되려 후회만 남기도 한다. 다신 그 얘기하지 말아야지. 다신 그 감정에 접근하지 말아야지.
하지만 내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면 그 말은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마음에 위로가 되었건 위안이 되었건 나를 건드린 말이라면. 문장이 마음을 건드렸지만 안전하지 않아 충분히 울지 못했다면?
어떤 문장이 꼭 내 마음 같아서 움직였다면, 지나치지 말고 그 문장과 그 마음을 기억하자. 깊은 물속에서 나를 찾아 올라온 바로 그 문장을 몇 번이고 되뇌며 나를 어루만지자.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그 말이었구나. 알아봐 주자.
누군가에게 다시 듣게 되기를 기대하기보단 내가 알아주자. 파도가 흐르는 중에도 내가 내 마음의 문장을 발견한다면, 우린 파도 위를 즐기며 타는 서퍼가 될 수 있다. 이리저리 치이지 않고 감정의 위를 다스리며, 문장이라는 보드를 타고, 나를 가장 잘 알려주는 그 순간으로 파고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