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려고 할 때 우린 힘을 준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눈도 부릅뜨고 입술을 앙다문다. 온 근육에 긴장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몸 전체에 힘이 들어간 상태는 굳어 있기 쉬워서 되려 손쉽게 실수를 낳는다. 글씨를 잘 쓰려고 하다 연필심이 부러지고 말듯이. 우리도 부러져 버린다.
모든 일이 그렇다. 운동도 마찬가지이며 춤도 그렇다. 동작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 잔뜩 힘을 주면 부자연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춤이 되기도 한다. 힘이 들어갈 덴 들어가고, 빠질 덴 빠져 있어야 한다. 그래야 움직일 수 있고 그래야 이어질 수 있다.
인간관계라곤 왜 아닐까. 힘줘서 잘하고자 할 때 우린 더 좌절을 겪는다. 잘 보이고 싶은 사람, 잘 지내고 싶은 사람, 마음에 드는 사람 앞에선 더 긴장하고 더 실수한다. 힘이 잔뜩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건 자연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연애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뚝딱대다 기회를 놓치고, 그렇지 않은 사람 앞에선 충분한 매력발산을 하게 되지 않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잘하고자 하는 마음은 예쁜 마음이다. 그 순간 최선을 다하고 내 노력을 쏟고자 하는 사랑스러운 결심이다. 그러나 우린 그 마음을 한걸음 멀리에서 볼 필요가 있다. 힘이 잔뜩 들어가서 왼발과 왼손이 같이 나가며 걷는 것을 바라는 마음은 아니었을 테니까. 잘하고 싶었던 만큼, 그 뒤 따르는 실패에 타격감도 큰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큰 실수를 하고 크게 좌절한 나를 마주한다면, 잘하고 싶었던 내 마음을 알아줄 일이다. 실수를 탓하고 나무라기엔 우린 마음과 에너지를 많이 썼다.
어떤 일의 결과로 누군가 화가 많이 났다면, 혹은 눈물을 쏟는다면, 그 또한 그 일이 간절했던 탓이다. 힘을 꽉, 줬던 만큼 힘을 많이 쓰고 지쳤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그런 너에게, 우린 힘 뺀 토닥토닥을 건네주어야 하지 않나.
힘을 빼는 것 역시 힘줘 본 자만이 할 수 있다. 우리 몸에 마음에 머리에, 강한 힘이 들어가 있다면, 이제 힘 빼는 법을 배울 차례이다.
온몸에 힘을 빼고, 그러려면 심호흡을 하고. 내 앞에 있는 일들을 마주하자. 이완된 내 몸과 마음이 부드러운 '내'가 되어 일을 폭 끌어안을 수 있게. 안겨본 이들은 안다, 안아본 이들도 안다. 몸을 가볍게 늘어트렸을 때 꼭 안길 수 있음을.
잘하고 싶은 일이 있는가? 잘 지내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나에게 너무 많은 힘이 들어가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자. 마음과 몸에 살짝, 힘을 빼고 자연스러운 나로 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