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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순간

by 몇몇 Feb 06. 2025

상처받지 않는 삶은 없다. 우리는 언제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크고 작은 생채기가 아물면서 우리는 고통을 경험하기도, 성장을 경험하기도 한다.


치유는 언제 일어나는가? 그 상처들에 딱지가 앉는 순간은 언제인가?


상처 입은 이와 대화할 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고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혹은 내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고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그 반복은 우릴 치유로 이끈다. 다시 말하고, 또 말하고, 여러 번 반복할 때 우린 알 수 있다. 상처를 치료 중이라는 걸.


그래서 상처를 꺼내지도 않고, 그곳에 접근하지도 않는 사람의 상처는 계속해서 곪는다. 치료가 필요한데 병원 가기를 미루는 것과 같다. 그 이야기를 꺼내고 다뤄갈 때 우린 아프지만 상처에 소독약을 뿌리고 이물질을 제거하고 있다.


이야기가 치료임을 깨닫지 못하면 말하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엔 입 밖으로 꺼내지 않게 된다. 자꾸 반복하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거나, 듣는 이가 지겨워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말하기를 멈추어도 문득문득 상처는 계속 머릿속에 그 이야기를 띄운다.


지금 치료해 달라는 뜻이다. 지금 알아달라는 뜻이다. 결국 처음부터 말하지 않는 사람들보다 조금 낫지만 비슷한 비슷한 상황이 된다. 끝까지 낫지 못한 상처가 고통을 만든다.


치료에는 복병이 많다. 아무리 말해도 끝끝내 닿지 않는 영역이 있다. 그곳에 접근하려면 조금 더 특별한 경험이 필요하다.


상처받은 이들은 자신을 탓하기도 하고, 상황을 탓하기도 한다. 시간을 탓하거나 되돌릴 방법을 찾거나 원망하거나 욕을 하다가도 다시 스스로를 비난하길 반복한다.


어떤 사람은 무덤덤하게 회상한다. 어떤 사람은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눈물짓는다. 왜 눈물이 나지. 머쓱해하며 눈물을 닦기도 한다.


아직, 아직이다. 모두 치유의 때는 아직이다.


순서는 달라도 눈물 흘리며 이야기하다가 점점 덤덤해지는 이들도 있다. 분석적으로 상황을 낱낱이 파헤쳐서 내가 잘한 점 상황의 아쉬운 점 연관된 이들의 여러 특징을 열거하기도 한다.


모두 자신의 상처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상처 근처로 접근해서, 뭐라도 해보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정말, 정말 치유는. 치료는.

그다음으로 넘어가야 시작된다.


그 일을 겪은 나를 안쓰러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나 진짜 어렸구나. 정말 힘들었겠다. 얼마나 괴로웠을까. 상황을 이해하고 사람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서, 내가 나를 애처로워하는 마음. 거기로부터 시작된다.


'나도 잘한 건 없어.'

에서는 치유가 일어나지 않지만


'내가 얼마나 잘하고 싶었는데. 얼마나 아쉬웠겠어'

에서는 치유가 시작된다.


'부모님은 그때 그럴 수밖에 없었지.'

로는 상처에 접근할 뿐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는 너무 어렸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여기에서 치유가 일어난다.


'이제 와서 어쩌겠어.'

라는 말은 상처에 접근할 수 없지만


'참 고생 많았지. 애 많이 썼어.'

에서는 새 살이 돋는다.


어려운가? 물론 어렵다. 내가 겪은 일들에 따스한 말을 붙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린 그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많은 분석과 논리와 합리적인 추론을 해왔다. 이해하기 위해서. 버텨내기 위해서. 나아가기 위해서.


그러다 보니 '나'에 대한 이해와 위로는 자꾸만 미루어 둔다. 정작 그 상황을 지나온 것은 어린 나 임에도.


당신의 상처를 나는 모른다. 우린 저마다의 상처가 있다. 그곳을 알고 있다면, 치료를 멈춘 채 속 깊이 묻어두고 있다면, 나를 돌보는 말들로 치유를 시작해 보자.


새살이 돋아나기 시작하면 마음에도 봄이 올 것이다. 보다 따뜻한 마음의 계절을 맞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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