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차 타고 다니던시절에는 맨션일지도

3

by 코리디언

[Episode 3] — 마차 타고 다니던시절에는 맨션일지도




언제,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지난밤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낯선 풍경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이삿짐들이 보이자 현실로 돌아왔다.


어제 전쟁 같은 이사를 했다는 기억이 스멀스멀 돌아오고, 이사하는 통에 제대로 밥도 먹지 못했다는 기억도 떠 오르면서 허기를 느낀다.


쌓여있는 이삿짐 사이를 비집고 부엌으로 나가 쌀 담긴 봉지를 찾고, 압력밥솥을 찾아서 스토브 위에 밥을 안쳐놓고 널찍한 발코니 문을 열었다.


8월의 후덥지근한 습기 먹은 바람이 살갗에 닿는다.


지난번에 살던 14층 아파트에서 바라보던 풍경과는 다르지만, 나지막한 집들이 보이는 게 정답게 느껴진다.


집 바로 앞은 왕복 6차선 도로에 차도 많이 다니는데 신기하게도 문을 닫으면 그 소리가 차단이 된다. 그렇다고 한국처럼 3중 유리의 방음장치가 잘 된 창문도 아닌데 말이다.


4층건물에 2층인 우리 집은 다른 집에 비해 널찍한 베란다가 있다. 옛날에는 여기서 주민들이 모여 파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서 차도 마시고 했는데, 어느 해인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서 무너져 내렸단다.


사람수도 그렇거니와 너무 오래된 건물이라 안전 차원에서 이제 주민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심지어 우리도 우리 사유의 베란다 공간 밖으로 나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냥 눈으로만 넓은 베란다를 가진다는 것뿐이다.


쉑쉑 섹쎅 치~~~~~익


압력밥솥이 기차소리를 내며 밥이 다 되었음을 알린다.


솥에 불을 끄고 뜸을 들이는 동안 밥숟가락과 공기 몇 개를 찾아서 한쪽으로 모아놓고, 부엌살림들을 대충 캐비닛 안으로 정리를 해 본다.


우리 집에 살던 전 주인은 22년 동안 이 아파트에서 사신 근처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신 교수님이셨다. 이제는 나이가 드셔서 계단을 오르고 내리시는 게 어려워서 시니어(Senior) 아파트로 이사를 하신다고 하셨다.


처음 이 집을 구경했을 때는 현관 앞 큰 거실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다.

현재 우리는 그곳에 책상과 책꽂이를 벽에 둘러 세워서 가족 공용 서재로 사용하고 있다.


겨울에는 햇빛이 거실 끝까지 들어오지만, 여름은 해가 창문 근처에만 방문하고 가서 해가 들지 않아 시원하다. 캐나다에서는 보기 드문 남향으로 큰 창이 난 집이다.

남향집을 좋아하는 한국과는 달리, 캐나다는 겨울이 길고 그나마 겨울은 해가 일찍 지기 때문에 오랫동안 햇빛과 열기를 붙잡아 놓기 위해 대부분 서향으로 큰 창을 낸 집이 많고, 인기가 있다.



이제 우리의 보금자리가 된 이 아파트 랜선 집구경을 하자면,


현관은 좀 좁은 편이지만 보통 아파트 현관과 다르지 않다. 현관을 들어와 왼쪽에는 옷장이 있다.

한국은 신발장이 놓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캐나다의 아파트 현관에는 작은 옷장이 있어서 외출하고 돌아오거나 손님이 오시면 겉옷을 받아서 걸어둔다.

물론 옷장 바닥에는 신발을 놓아 신발장 역할도 겸해서 한다.


왜 한국은 신발장이 중요할까?

내 생각에는

그건 신발을 벗고 실내생활을 하는 문화 때문이 아닐까?

반면 서구는 집안에 신발을 신고 들어오는 문화였기 때문에 신발을 벗을 일이 없어서 신발장이 크게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해 봤다.

한국을 포함해서 신발을 벗는 민족들은 밖에서 신던 신발이 더럽기 때문에 신을 벗고 들어온다고 생각하는 반면, 신발을 신고 실내에 들어오는 서양사람들은 발이 더럽다고 생각해서 신을 신는 거라고 한다.


문화와 사고의 차이가 생활양식을 바꾸는데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지금은 대부분의 캐나다인들도 신발을 벗고 실내생활을 한다.

우리들의 생활방식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거실 옆은 큰 다이닝룸이 있다.

원래는 접이식 문이 있어 공간이 분리가 된 곳이었지만, 레노베이션 이후로 문을 떼었다.

주인은 우리가 원하면 문을 다시 달아주겠다고 했으나, 공간 분리가 이미 되어있고, 오픈 콘셉트로 집이 더 넓게 보이는 게 시원해 보여 괜찮다고 했다.

이곳은 주로 갈색톤의 가구로 통일을 했다.

다행히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사용했던 피아노도 갈색톤이었고, 한국에서 쓰던 고가구들이 다들 나무의 자연스러운 갈색들이어서 뭔가 통일된 분위기였다.

단 이사 가면서 지인이 주고 간 8인용 식탁이 검은색이긴 하지만, 포인트가 되어서 좋다.


다시 현관으로 돌아와서 현관에서 왼쪽으로 돌면 화장실과 방 두 개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그중 한쪽은 마스터 베드룸이어서 우리 부부가 쓰고 있다.

건넌방은 아들 방으로 방이 넓어 보이게 하기 위해 아이키야에서 흰색 가구들로 채웠다.


현관을 이어 들어오면 짧은 복도가 있다.

우린 이곳을 가족여행코너로 만들었다. 세계지도를 벽에 붙여놓고 우리 가족들이 다녀온 여행지를 표시했다. 벽에는 여행 때마다 기념품으로 사 온 지역의 컵들로 채워놓고, 작은 책꽂이에는 컵 이외의 기념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그 복도를 지나면 다시 다이닝룸과 연결이 된다.

다이닝룸 중앙에는 샹들리에가 있고, 긴 반다지에는 우리 가족들과 손님들이 오실 때 대접할 커피 용품들을 모아 작은 카페를 만들었다.

반다지 옆을 지나면 또 다른 공간으로 이어지는 출구가 있는데 여기도 원래는 문이 달려 있었으나, 지금은 역시 오픈으로 되어있다.


이곳에서 우측은 주방으로 들어가게 되어있고, 좌측에는 작은 창고공간과 화장실과 욕실이 딸린 아주아주 작은 방이 있다.

복도 벽 쪽으로는 비상구 문이 있어 비상시에 대피할 수 있는 또 다른 계단으로 이어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베란다는 다이닝에서 나갈 수 있는 구조로 아침마다 나는 이 문을 열어 집안의 공기를 바꾼다.

다이닝룸과 부엌을 나누는 조그만 출입구에는 원래 문이 달려있었고, 문을 닫으면 완전히 분리가 되게 되어있다.

나의 상상은 부엌으로 연결된 아주아주 작은 방은 아마도 메이드(Maid:집안일을 시키기 위해 고용된 여자 하인)의 방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보면서, 내가 마치 이 맨션의 안주인이 된 상상을 해 본다.

고급진 자색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올리고, 진주귀걸이와 목걸이를 하고, 19세기 영국제 본차이나에 밀키우롱차와 스콘으로 애프터눈티 타임을 즐기는 상상




퀘벡에서 아파트는 사이즈를 다른 캐나다 지역 하고는 다르게 표시한다.

이를 테면 우리가 말하는 스튜디오는 1 ½이라고 하고, 방이 하나일 경우는 2 ½ 혹은 3 ½ 그리고 방 2개는 4 ½ 보통은 방 3개는 5 ½ 로 표시하지만, 우리 집은 방이 3개이지만, 다이닝룸이 거실과 분리되어 있고, 작은 방에 딸린 화장실 때문에 6 ½이다.

이 빌딩에서 방이 3개 있는 스위트(Suite)는 우리 집을 포함해서 단 6개뿐이다. 따라서 경쟁이 심한데 다행히 우리가 차지할 수 있어서 행운이라 생각한다.


이 아파트 빌딩에는 입주자들을 위한 엘리베이터가 없다.

적어도 우리 라인에는 엘리베이터가 없고, 양쪽 윙(Wing)에는 물건을 옮길 수 있는 작은 엘리베이터가 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우리 빌딩에는 나이가 많이 드신 분이 적게 사신다.


빌딩의 메인 엔터런스( Main Entrance)로 들어오면 20세기 프랑스식의 고급 저택에 들어온 느낌이 든다. 길게 늘어선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며진 창과 천정의 석고문양은 이 건물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나이를 말해주는 것 같다.

정문에서 곧바로 들어오는 현관문을 포함 오른쪽, 왼쪽의 윙(Wing)으로 작은 3개의 현관문이 있다.

4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이 작은 아파트는 조용하고 깨끗했다.


정문 앞에는 작은 정원이 있는데 아파트 회사에서는 전문 정원사를 고용해서 해마다 이곳에 새로운 꽃들을 심고, 관리하게 한다.

그래서 가끔 이곳을 지나가는 행인들이나 관광객들은 우리 아파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가기도 한다.


실내구조나 외관을 보면 아무래도 옛날에는 귀족들이 살았거나, 돈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맨션이 아닐까 싶다.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마부들이 건물 앞에서 기다리는 것을 상상하게 한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아파트와 달리 지하 주차장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마차를 지하에 주차할 필요가 없었겠다. 마부들이 자신의 집에 마차를 끌고 갔을 테니…

맨션의 안주인 상상놀이는 여기까지...


현실은 집안 가득 쌓인 이삿짐들 정리를 해야 하는 메이드( Maid) 일 수도, 마차를 끌었던 마부의 아내였을 수도 있다.


저 짐들을 언제 다 정리하지!!!






























keyword
이전 02화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