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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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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디언

[Episode 2] — 이사



드디어 이삿날 아침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이사하는 것 때문에 긴장한 탓인가 보다

나쁜 마이클!

눈뜨자마자 어제 일로 부화가 났다.

마이클은 그때 당시에 살고 있었던 아파트 주인이다.

그는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을 하는 유대인 샤일록 (Shylock)을 생각나게 하는 인물이다.

우리의 계약 만기일은 7월 31일이다. 새로 들어갈 아파트는 8월 1일이 입주다.

하지만, 이 많은 이삿짐을 다 나르고 난 뒤에 청소까지 하려면 하루가 모자라다.

원래 계획은 새로 이사하는 아파트의 레노베이션이 좀 일찍 끝나면, 잔짐들을 모아서 먼저 옮길 심산이었으나, 새로 입주할 아파트의 게으른 관리인은 엊그제서야 페인트를 마쳤고, 새집에 페인트는 습기 차고 무더운 여름날씨에 잘 마르지 않아 적어도 이틀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마이클에게 우리가 다음 달 1일 오전까지 집을 비우겠다고 했더니 처음에는 그렇게 하라고 해 놓고는 오후쯤 들러서는 무슨 변덕인지 말일 12시까지 모든 것을 비우라고 으름장을 놓고 갔다.

아마도 우리가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의 월세가 그동안 우리가 냈던 월세보다 어림잡아 두 배정도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벨이 좀 꼬인듯하다.




어젯밤 늦게까지 짐을 싸느라 몸이 고된 탓인지 어깨도 무겁고, 허리도 뻐근하다. 5분만 더 자고 일어날까 하다가 그냥 침대에서 내려왔다.

부엌에서 물 한 잔을 들이켜고는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었다.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8시쯤 온다고 했으니 아직은 여유가 있다.

이 집에서 마시는 마지막 커피 한 잔을 들고 베란다로 향한다.

14층에서 내려다보는 동네

속 시원하다.

정이 가질 않았던 집이다.

이 아파트에 이사 와서 나는 이상하게 몸이 시름시름 아팠다.

이유도 원인도 모르게 매일 미열이 있었고, 늘 무기력했다.

고층 아파트에 불어드는 바람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덜컹거리는 창문으로 인해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다.

입주한 후 며칠이 안되어서는 작은 개미가 부엌이며 화장실이며, 현관문과 벽장 사이에서 득실거렸다.

손으로 죽이고, 약을 뿌려도 되지 않아서 집주인인 마이클에게 연락을 했다.

사람을 보내서 조치를 취하겠다 했던 그는 자격증 있는 공식 엑스터미네이터(Exterminator)를 보내는 대신에 아파트 빌딩에서 싼 임금으로 고용한 필리핀계 관리인을 보냈다. 그리고 분홍색의 액체를 현관옆에 개미굴로 보이는 곳에 분사를 하고는 떠났다. 사람에게 해로운 것은 아니냐고 했더니 모른다고 무책임하게 말했다.

그뿐 아니라 15층 빌딩에 쥐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파트 꼭대기층인 우리 집이 종착지였다.

새벽마다 아이들 도시락을 싸기 위해 부엌으로 가면 그 전날 쥐약을 먹거나 덫에 걸린 쥐들의 시체들로 인해 나는 혼비백산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마이클은 괜찮다며 더 이상의 조치를 하지 않았다.

자격증을 가진 엑스터미네이터(Exterminator)를 업체를 통해 부르면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값싸게 먹히는 방법을 다 해보고, 그러는 동안 모든 불편함은 고스란히 세입자의 몫으로 남겨지는 것이다.

나는 되도록이면 이 집에서 빨리 나가고 싶었다.

남편도 잠에서 일어나고, 딸아이도 일어났다.

미리 만들어놓은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이사준비를 시작한다.

딱히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어젯밤 늦게까지 잔짐들을 모두 박스에 넣어놓고 이사 당일 아침에 먹을 음식들과 냉동실에 넣어둔 저장음식들을 아이스박스에 넣기만 하면 된다.






이삿짐센터에서 사람들이 왔다.

미리 예약해 둔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통해서 3명의 일꾼들이 장비를 가지고 올라왔다.

한 사람은 비쩍 마르고 말수도 적고, 힘을 쓸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또 한 사람은 이 일에는 도통한, 경험도 많아 보이는 고수의 느낌이 팍 나는 사람이다. 온몸에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한자로 문신을 가득 채우고 담배를 뻑뻑 피워대고 있다.

마지막 한 사람은 순해 보이지만, 배가 불뚝 나와서 조금만 움직여도 쒝쒝 숨소리가 가쁘다.

이곳의 이사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이삿짐센터에서 출발하는 것을 1시간 잡고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당 값을 매기기 때문에 일꾼들이 슬렁슬렁 일을 한다.

시간이 길어야 자기들에게 떨어지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포장이사가 너무도 그립다.

내 돈 내고 사람을 부른 건데 내가 눈치를 본다.

일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벌써 쉬고 있다.

속이 터진다.

착하디 착한 남편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이삿짐센터 일꾼들보다 더 열심히 짐을 나른다.

도대체 이 나라 인간들은 무슨 배짱인지…..

1시간이면 떡을 치고도 남을 이삿짐을 8시간을 걸쳐서 한다.

돈은 돈대로 내고 속은 속대로 터지고 결국 느릿느릿 나무늘보 속도로 일하는 그들을 돌려보냈다.

눈에 성가신 그들이 없어지는 게 차라리 나았다.

이제부터가 문제다.

아직도 잔 짐들이 남아있고, 청소도 해야 한다.

인정머리 없는 마이클이 청소를 꼬투리 삼아서 보증금을 꿀꺽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입에서 단내가 난다.

점심에 간단하게 서브웨이 샌드위치 한쪽 먹은 게 끝이었다.

거실, 방 2개, 창문 12쪽- 창문이 그리 많은 줄 몰랐다. – 화장실, 옷장 3개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엌을 정리하고 나니 밤 11시다.

너무 지쳐서 허기진줄도 몰랐다.

다시 새 아파트로 돌아오니 짐이 산더미다.

여기저기 아무렇지 않게 쌓인 짐들을 보자 이삿짐센터 일군들에게 욕이 저절로 나온다.

식당들도 문을 닫고, 나갈 기운도 없고, 짐들 사이에서 찾아낸 농심 신라면 2개를 끓여서 셋이 나누어먹고, 씻고, 거실 한가득 쌓인 짐들을 방으로 일단 밀어 넣고

침대 매트리스만 찾아서 펴고 우리 세명은 쓰러지듯 누었다.

이제야 허리를 편다.

몸 천체에서 하루 노동의 뻐근함이 느껴져 온다.

어느 한 해는 1년 만에 이사를 3 번한적도 있다. 그것도 대륙을 건너서…

한국처럼 남이 와서 짐을 싸주고 풀어주고 하는 것도 아니니

캐나다에서 이사는 정말 그만하고 싶다.

거실 매트리스에 물에 젖은 담요만큼 무거운 몸을 뉘이니

20세기 프랑스 양식의 천장문양들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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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에 이런 문양들을 새겨 넣은 것이 신기하다.

100년 전에는 이런 문양들이 아마도 최신 유행이었을 것이다.

긴 하루였다.

천정에 아기천사 문양을 바라보다 눈에서 갑자기 빨간 레이저가 나올 것 같은 호러 무비(horror movies) 가 연상되었다.

몹쓸 생각이다.

몇 번 눈을 껌뻑였는지도 모르게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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