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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추적기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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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디언

[Episode 4] —위치추적기가 필요 없다



한국은 지금도 그런 전통이 남아 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어렸을 때 이사를 하면 주변 이웃들에게 새로 이사 왔다고 떡을 돌리며 신고식을 했던 기억이 있다.


캐나다에서도 가끔은 이웃들에게 꽃이나 홈메이드 케이크를 들고 인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아파트에서는 거이 드문 일이다.

그래도 계단에서 이웃을 만나면, '하이! 하와유?' 정도로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기도 한다.


얼추 이삿짐 정리를 하고, 모아둔 쓰레기를 버리려고 나갔다가 개와 산책하러 나오는 3층에 사는 중년 부인을 현관문에서 만났다.

새로 이사 온 동양 아줌마를 보고는 멈칫하면서도 반갑게 인사를 건네준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스탠더드 푸들이 나를 덮치지만 않았다면, 아마도 우린 좋은 이웃사촌이 되지 않았을까 싶지만, 개를 무서워하는 나는 더 이상 그 아줌마와 가깝게 지내지 못하고 있다.


다른 편 3층 이웃은 바로 우리 집 위층에 사는 미스터리 한 존재이다.

조심스러워 그녀의 집을 노크할 용기를 내지 못해서 나이도 모르고 얼굴도 본 적은 없다.

아마도 직장을 다니는 여성이라 추측한다.

그 이유는 아침과 저녁에만 그녀의 인기척이 느껴지고, 그 이웃이 여성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그녀가 걸어 다닐 때마다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조용한 위층에 사람의 인기척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그녀가 일정한 시간에 출퇴근을 할 때 이다.

그녀가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걸을 때면 그녀가 지금 어디쯤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상상이 된다.

때론 그 발걸음이 부엌으로 이어지고, 거실로 이어지고, 침실로 이어지고…

의도치 않게, 나는 그녀가 어디쯤에 있는지 위치 추적이 가능하다. 그녀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것은 아닌가 미안하기도 하고, 일부러 듣지 않으려고 TV를 크게 틀어놓을 때도 있다.


한국도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층간 소음으로 이웃들과 사이가 좋지 않고, 심지어는 정신적으로 힘들어한다는, 그래서 가끔은 갈등이 커져서 끔찍한 사고도 있었다는 소식을 듣기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목조건물에서 나는 층간 소음은 콘크리트 아파트에서 나는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무로 지어진 이 100년 된 아파트는 나이만큼 앓는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조금은 과장해서 윗집의 방귀소리도 들리고, 밤에 코 고는 소리, 아침에는 알람소리도 들린다.


처음 캐나다에 와서 살았던 그 아파트도 거이 100년쯤 된 아파트였는데, 밤에 잠결에 위층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 마치 우리 집에 누군가가 저벅저벅 들어오는 줄 알고 남편과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나가 보았더니 아무도 없어서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캐나다에도 콘크리트 건물들이 많지만, 여전히 주택을 지을 때는 이곳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건축재료인 나무로 집을 짓는다. 건축의 주 재료가 나 무인 탓에 층간 소음으로 인한 고충은 위층 사람들이든,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든, 둘 다 어려움이 있다.

목재로 건축된 건물이 많은 캐나다에서는 집이 불타고 나면, 변기만 남는다는 우스개 농담이 있다.

여하튼, 1인가구였던 그녀는 일상의 움직임이 그대로 우리에게 노출되었다.

그 이야기 즉슨, 우리의 위치도 아래층 사람들한테 다 노출이 된다는 이야기다.

우리 집 식구가 4명인 것이 참 다행이다.


그녀의 출근 전 시간과 퇴근 이후의 시간

또각거리는 그녀의 하이힐 소리가 가끔은 거슬렀지만,

새로운 이웃이 위층인 그녀의 집에 이사하기 전까지 1여 년 동안 그녀가 얼마나 우리를 배려해 주었는지 나중에 알게 되어 감사할 뿐이다.


그런데 나 외에는 이런 소음에 다들 무던하게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한 번도 우리 집에 소음으로 인해 항의를 하러 온 사람도 없고, 나 또한 윗집에 시끄럽다고 불평을 이야기한 적도 없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불편한 것에 조금은 무던해져야 하는 것 같다.

내가 불편한 만큼 그 누군가도 불편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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