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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5]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새로 이사를 오면 건물에 모든 것이 낯설고 필요한 것이 많다.
마땅히 물어볼 사람도 없어서 늘 찾게 되는 건 관리인이다.
우체통 열쇠도 받아야 하고 세탁실 열쇠와 지하 창고 열쇠도 부여받아야 하는데 도통 관리인인
페드로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
급한 마음에 아파트 빌딩 복도를 서성이고 있는데, 몸집 좋은 퉁퉁한 아줌마가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손에 든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상태에서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육중한 아파트 로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나는 페드로가 들어오는 줄 알고 고개를 돌려 보다 그녀와 잠깐 눈을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하이’라고 인사를 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어서 내 인사를 못 들었나 싶었는데 그녀는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는 내게
무표정하게 인사를 건넸다.
당황했던 나는 의도치 않게 내가 얼마 전에 이사 온 새로운 이웃이라고 내 소개를 해 버렸다.
그녀는 무뚝뚝하지만, 불친절하지는 않았다.
낯이 설었던 탓인지 새로 이사 온 이웃인 나를 향해 앙칼진 목소리로 스탠더드 슈나이저 두 마리가 짖는다.
강아지를 보자 오래된 디즈니 만화영화 ‘레이디와 트램프’가 떠올랐다.
두 마리 강아지 중 한 마리는 나를 향해 더 많이 짖어 나의 눈길을 끌었다. 자세히 보니 강아지의 앞발 한쪽이 없었다.
‘어머나!’ 나도 모르게 작은 소리가 났다. 그녀는 자신도 알고 있다는 듯 아무 말 없이 씩 웃어주었다.
나를 향해 짖던 강아지들을 진정시키면서 미안하다며, 그녀는 자신은 오른쪽 윙(Wing) 건물에 살고 있다면서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하라고 했다.
얼굴은 분명 동양인이긴 했지만, 한국이나 중국보다는 아마도 캐나다 인디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어찌 되었든 동양미라는 것에 왠지 모를 내적 친밀감도 느껴졌다.
나는 페드로를 찾는데 연락이 안 된다고 했더니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을 열더니 페드로의 개인 전화번호를 알려주겠다고 선뜻 말한다.
받아도 되나 싶었지만, 자기도 오피스 전화로 연락이 안 될 때는 개인 번호로 연락을 한다고 덧붙여 말해주니, 그녀의 호의와 친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그녀와 그녀의 강아지들에게 전하고는 얼른 들어왔다.
어릴 적 쉐퍼드( German Shepherd) 에게 물리지만 않았어도 개를 무서워하지는 않았을 텐데…
코비드 팬데믹 전에는 아파트에서는 개를 키우는 것이 제한적이었다.
우리 아파트에서도 우리가 계약할 당시에는 개나 고양이처럼 애완동물을 키우려면 $200의 추가 요금을 더 내야 했다. 하지만 코비드 팬데믹을 지나면서 사람들의 정신건강(Mental Health)에 더 많은 관심이 올라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는 것을 허가해주어서 그 숫자가 증가했다.
그녀뿐 아니라 이 아파트에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4층에는 저먼쉐퍼드, 3층에는 스탠더드 푸들, 플랫코티드 레트리버, 왼쪽윙에는 주로 검은색, 노란색 웰시코기가 많다. 물론 레이디 트럼프에 나오는 슈나이저와 아메리칸 코커스패니얼도 있다.
개의 종류는 종류별로 아마 거이다 있는 것 같다.
아파트 계약당시 나는 복도 벽에 붙여진 개금지 포스터 사진을 보고 이 집이 나에게 맞춤집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사를 하고 보니 개를 키우는 집이 많았다.
사실 내가 본 포스터는 빌딩 안에서 개줄을 꼭 묶고 다녀야 한다는 경고였는데, 내가 착각해서 본 거라는 것을 슈나우저 엄마를 만난 후 알게 되었다.
여하튼, 그 이후로도 개를 데리고 다니는 그녀를 종종 집 근처에서 만나게 되었고,
가끔이긴 하지만, 그녀는 내가 이 아파트에서 유일하게 길게 대화하는 이웃이 되었다.
다른 개들은 여전히 무서운데 다리가 아픈 그 슈나이저에게는 유독 정이 간다.
얼마 전 오랫동안 그녀를 보지 못하다가 한참만에 다시 만났을 때 그녀의 곁에는 다리가 절단된
슈나우저 한 마리만 있었다.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얼마 전 죽었다고 한다.
‘아앰 쏘리’
‘땡큐’
나는 말없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개를 무서워했던 나는 어느새 그녀와 공감대가 쌓여가는 사이가 된 것일까?
그날은 햇살이 잘 드는 나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에스프레소 한잔과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The Lady with the Dog)’책을 읽는 것으로 보냈다.
그녀와 다리가 아픈 슈나이저가 슬픔을 잘 극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