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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루에 (à lou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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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디언


[Episode1] — 아루에(à louer) & 페드로(Pedro)


겨우내 내렸던 그 많은 눈이 녹아 홍수가 났다. (한국은 여름에 장마로 홍수가 나지만, 캐나다는 눈으로 인해 봄에 홍수가 난다.)

엎친데 겹친 격으로 비도 많이 내린 월요일 오후.

챙이 넓은 골프우산을 썼지만, 여전히 내리는 비를 모두 막을 수는 없었고, 신발에도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사를 결심한 이후로 눈독을 들였던 아파트를 오늘 방문하기로 했다.

하지만, 방이 비어있다는 À Louer ( For Rent라는 프랑스어)라는 간판과는 다르게 전화를 걸어도 아파트 사무실에서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나는 이 동네가 맘에 든다.


이사를 결심하게 된 것은 당시에 의대를 다니고 있던 딸아이가 실습을 다녀야하기 때문에 딸아이에게 학교와 병원을 다니는 시간적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였다.

이 동네라면 학교나 병원들이 차로 10분이면 되었고, 아이의 걸음으로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이며,

무엇보다 집 뒤에는 몽로얄( Mont- Royal)이라는 산이 있어 산책하기에도 좋은 곳이기도 하다.


내가 눈독 들였던 아파트에 꼭 이사하기를 원해 끈질기게 전화를 걸었지만, 결국 그 아파트는 포기하고 주변의 다른 아파트로 찾아봐야만 했다.

다행히 산 자락 끝에 있는 또 다른 아파트의 사무실 직원과 통화가 되어서 빈 집을 구경할 수가 있었다.

주차비는 별도로 내야 하긴 하지만, 주차장도 있고, 세탁실도 깨끗하고, 방도 3개이고, 공간도 쾌적해 보였지만, 무언가 우리 마음에 ‘딱 이 집’이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고맙다고, 잘 둘러보았다고, 좀 더 생각해서 연락을 주겠다고 하고 돌아서 나왔다.


비는 계속 내리고, 피곤도 몰려오고, 마음도 착잡했다. 발걸음은 다시 내가 눈독을 들였던 그 아파트 앞에 멈추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전화를 해 보았지만, 여전히 자동응답기의 전자음성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불어로 메시지를 전해왔다.

남편과 나는 포기하고 돌아서려는데 남편이 그 아파트 옆의 건물은 어떠냐고 물었다.

그래 한 번 더 가 보자라는 마음으로 옆건물 아파트 정문을 열었다.


내부는 마치 박물관을 연상케 했다.

길게 뻗은 복도와 깨끗하게 청소된 대리석 바닥과 육중한 갈색문, 그리고 스테인글라스로 장식된 유리문 창문들이 인상적이었다.

3개의 중문들은 굳게 닫혀있었고, 아파트는 너무도 조용해서 나는 숨소리도 죽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짧고 까만 머리를 곱게 뒤로 빚어 넘기고 작달막한 키에 배가 넉넉히 나왔고, 눈이 부리부리하고 단정한 옷차림의 50대 남성이 오른쪽으로 난 중문에서 나온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페트로라는 이름의 아파트의 관리인( Care Taker)이었다.


남미의 강한 악센트를 담은 그가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온다.

‘봉주르(Bonjour)’!

남편은

하이 하와유?(Hi, how are you? 라고 인사를 받으며,

우리는 집을 찾고 있고, 이 건물에 세놓은 아파트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최근에 빈 아파트 하나 나온 게 있다며 우리를 왼쪽으로 난 중문으로 데리고 갔다.

계단 밑으로 난 구석에는 오래된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사실 난 그것이 엘리베이터인지도 몰랐다. 그냥 평범해 보이는 문인데 그걸 열면 엘리베이터가 나온다. 시대적으로 19세기 배경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그런 엘리베이터였다.

4층을 누르고 덜컹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 동안에 엘리베이터가 멈춰버릴까 마음을 얼마나 졸였는지.. 4층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나가면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페드로가 처음 보여준 집은 막 이사를 나간 후라 그런지 어수선했고, 지저분했다. 결정적으로 방의 개수가 2개인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우린 방 3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른 집은 없냐고 물으니,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다음 달에 이사를 갈 집이 있다고 했다.

바로 볼 수 있냐고 했더니 페드로가 먼저 그 할머니( Old Lady)에게 먼저 전화를 해서 양해를 구해보겠다고 했으나 너희가 예약을 하고 온 것이 아니니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잠시 후, 페드로는 좋은 소식을 갖고 정문 현관에서 기다리는 우리에게 왔다.

혼자 사시시는 할머니는 흔쾌히 집을 구경해도 된다고 허락하셨다.

남편과 나는 조심스럽게 인사를 하고 집을 구경했다.

잠시 전에 보았던 아파트와는 다르게 남편은 첫눈에 이 집을 좋아했다.

거실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도 그랬고, 넓은 부엌과 무엇 보다도 우리가 필요했던 방 3개와 화장실이 2개나 되었다. 다이닝 룸 옆에는 베란다로 나가는 커다란 격자모양의 하얀색 문이 낭만적으로 보였다.

일반 고층아파트가 아닌 정말 고유의 개성이 넘치는 프랑스 양식의 100년 된 아파트에 우린 매료되었다.

구경 잘했다고 인사를 하고 다시 정문 복도에 서서 고민을 했다.

생각보다 월세가 비쌌다.

페드로는 방 3개짜리 아파트는 이 건물에 딱 6개밖에 없어서 웨이팅도 길다며, 너희가 원하면 우리에게 주겠다고 빠른 시일 내에 연락을 달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이 많아졌다.


캐나다에서 살 집을 구하는 방법이 한국하고는 좀 다르다.


물론 한국처럼 공인중개사와 같은 리얼터(Realter)를 통해서 얻기도 하지만, 보편적으로는 세를 내놓는 주인이 세 놓을 집 앞에 à louer라는 표시를 걸어두고, 연락처와 아파트 사이즈를 공개해 놓는다. 그러면 세입자들이 그 광고를 보고 연락을 취해서 주인과 세입자가 모두 만족하면 계약을 하게 된다.

계약서를 쓸 때는 바로 쓰는 것이 아니라, 주인 입장에서는 세입자의 신용정보를 조사할 허가를 받고, 전에 세를 살았던 집주인에게 세입자가 월세를 밀린 적은 없는지 레퍼런스를 받고, 월세를 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 확인 한 다음에 결정을 한다.

계약자의 신용에 대해 확신할 수 없을 때는 코사이너(Co- Signer), 한국으로 말하면 보증인을 요청할 수 있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입주 날짜를 정하고, 아파트 회사 사무실에서 계약서( bail résidentiel)를 쓰고 입주할 때는 관리인( Care taker)과 함께 꼼꼼하게 집을 둘러보고, 하자가 있는지 체크할 리스트에 체크마크를 해서 서로 사인하고 나누어 갖게 된다.


로케이션(Location)으로나, 아파트 크기로나, 집 상태로나 모든 게 맘에 들었다.

문제는 월세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월세보다 거의 2배의 월세를 내야 한다.

결국 하루를 고민한 끝에 우린 아파트 사무실을 다시 찾아 계약을 하기로 하고, 신용체크 허가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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