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nais-tu, Simon
날씨가 꽤나 차가워졌다.
가을이 깊어가는가 보다.
딸아이를 병원까지 데려다주고 들어오는 남편은 현관에 들어서자 바깥의 추위 때문인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주섬주섬 잠바 안 주머니에서 노란 은행잎 3장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나는 평소와 다르게 조심스러운 남편의 몸놀림에서 무엇인가 소중하고, 귀한 것이 나올 줄 알았는데, 고작 가을 나뭇잎 3장인 것에 김이 샜다.
남편은 고이고이 3장의 나뭇잎을 두꺼운 책 사이에 켜켜로 놓고는 몹시 만족스러워했다.
‘무슨 일이람?’
나이 먹으니 나는 남성호르몬이 돌고, 남편은 여성 호르몬이 분출되서인가?
남편의 가을을 즐기는 낭만과 센티함이 낯설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바람이 황금빛 속삭임을 실어 올 때, 계절을 따라 부드러운 후렴처럼 떠도는 이름이 있다.
한국어로는 시몬,
영어로는 사이먼,
프랑스어로는 씨몽.
학창 시절 가을만되면, 여기저기서 들리던 이름.
레미 드 구르몽( Rémy de Gourmont)의 시 시몬 너는 아느냐?( Connais-tu, Simon)에 나오는
시몬은 정말 알까?
이국만리 한국의 소녀들이 가을만 되면 자신의 이름을 그렇게 많이 부르며, 낭만에 빠진다는 사실을..
한국에서 가을만 되면 ‘시몬, 너는 아느냐?’라는 라인이나 전체 시 분위기를 좋아하는 현상은 몇 가지 문화적·정서적 이유가 겹쳐서 생긴 현상일 수도 있다.
한국의 가을은 사람들을 센티멘털한 계절로 인식되며, 음악, 드라마, 시까지 모두 감성, 사랑, 그리움이 더 깊어지는 계절이 되는 분위기다. 누군가를 조용히 부르는 말투와 말할 듯 말하지 않는, 감정의 여백을 남기는, 슬픔과 달콤함이 절묘하게 공존하는 ‘시몬, 너는 아느냐?( Connais-tu, Simon?)라는 문장이 최소한의 단어로 최대의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프랑스 상징주의 특유의 몽환적, 감성적인 이 시가 가을에 유행하는 흑백사진이나, 조용한 음악 같은 감성적 이미지를 그리게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구르몽의 이 시는 한국에서 문학 작품에서 감성 문장으로 또, 이미지 스타일을 통해 가을 감정의 상징으로 변형되었다.
이렇게 ‘감성 아이콘’으로 변신한 시는 나중에는 시보다 문장이 먼저 떠오르고 원문을 모르는 사람도 문장을 알고 구르몽을 전혀 모르는 독자들도 “시몬…”을 감성 코드로 사용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사실상 “시몬, 너는 아느냐. 가을의 쓸쓸함을.”은 원문에는 없는 문장이다.
심지어 “시몬, 너는 아느냐, 네 이름을 부르는 내 마음을.” 은 완전히 창작된 문장이다.
레미 드 구르몽라는 시인은 프랑스에서도 상징주의 주변부에 있었고, 한국 문단에서도 많이 언급되는 시인은 아니었다.
이 시는 처음부터 문학 교과서나 주요 번역본을 통해 알려진 정식 ‘명작’이 아니라,
감성 문구소비용으로 어느 개인 번역자가 소개한 문장을 통해 유명해졌다.
즉, 한국에서의 유명세는 시 자체보다 ‘문장의 느낌’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생긴 문화적 현상이다.
레미 드 구르몽(Rémy de Gourmont, 1858–1915)의 작품이 저작권 만료된 공공 도메인이 되었길 망정이지, 하마터면 저작권에 걸릴 사람들이 많아졌을지도 모른다.
남편이 뜬금없이 들고 들어온 은행잎 3장으로 옛날 추억의 이름 시몬을 소환해 본다.
Connais-tu, Simon… — Rémy de Gourmont (원문 / 프랑스어)
Connais-tu, Simon, la douleur d’aimer,
quand le cœur, comme un pauvre oiseau,
se débat contre les barreaux de la vie?
Connais-tu, Simon, la douceur d’aimer,
quand la bouche tremble
et que les yeux se ferment dans la lumière?
Connais-tu, Simon, le rêve d’aimer,
qui fait du monde un jardin
et de l’âme une fontaine de joie?
Connais-tu, Simon, le mystère d’aimer?
Nul ne le sait :
l’amour seul répond à l’amour.
한국어 번역 (직접 번역)
시몬, 너는 아느냐, 사랑의 고통을
마음이 가엾은 새처럼
삶의 쇠창살에 부딪히며 몸부림칠 때를.
시몬, 너는 아느냐, 사랑의 달콤함을
입술이 떨리고
눈이 빛 속에서 천천히 감길 때를.
시몬, 너는 아느냐, 사랑의 꿈을
온 세상이 정원이 되고
영혼이 기쁨의 샘이 되는 그 순간을.
시몬, 너는 아느냐, 사랑의 신비를**
아무도 알지 못한다네.
사랑만이 사랑에 대답할 뿐.
잠시 그쳤던 눈발이 다시 날리기 시작한다.
이젠 가을이 너무 깊어버려 겨울이 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