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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기린 Sep 11. 2022

인생은 마치 건포도가 박힌 빵을 먹는 것과 같아서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인터뷰를 한 일이 있습니다. 꼼꼼하게 작성된 질문에 답하는 동안 제 마음 속에 있는, 그렇지만 미처 알아차리고 있지 못하던 것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바라보는 행복, 그리고 삶은 어떤 것인지 묻는 질문에 답을 하고는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곱씹었습니다.


아직 평균 수명의 절반도 채 살지 않았기 때문에 행복에 대해, 삶에 대해 논하기에는 너무 이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 덕분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며 나름대로의 인상을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생각이기보다는 제가 마주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통해서 본 삶의 모습입니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건포도가 박힌 빵을 먹는 것과도 같습니다. 달콤한 건포도는 빵 안에 그리 많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어쩌면 어떤 빵에는 건포도가 다른 빵보다 더 적게 들어 있을지도 모르고요. 건포도만을 기대하며 빵을 먹는다면, 식사 시간의 대부분은 그저 퍽퍽한 빵을 씹는 무의미한 시간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달콤한 맛을 기대했는데 나오지 않을 때 우리는 이 퍽퍽하고 흰 빵에 배신감마저 느낍니다.


무언가 목표를 달성하고 성취하는 것, 행운이 따라오는 것, 짜릿한 즐거움을 주는 것들은 결코 우리에게 자주 찾아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좀 더 돋보이는 순간들은 빵 속에 든 건포도와 같이 가끔씩만 나타나고 이내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이런 순간들이 아니라 매일의 일상, 평범한 시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행복은 건포도가 아니라 흰 빵의 맛을 느끼는 데서 옵니다. 오래 씹을수록 퍼지는 부드러운 단 맛, 잘 맡아보면 코끝에 느껴지는 고소한 냄새. 빵의 맛을 음미할 때 비로소 삶을 온전히 향유할 수 있게 됩니다. 빵의 맛을 알 수 있을 때 건포도의 달콤함과 새콤함 역시 보다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매일의 평범한 시간들, 가장 가까운 곳에 행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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