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군 복무 중에 여러 번 들었던 질문이다. 병사를 인솔해 온 간부들이 간혹 이 친구가 꾀병인 것 같다고 말하며 나의 의견을 구하곤 했다. 다른 진료과를 전공한 친구들도, 객관적인 검사를 통해서 소견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전공과 달리 정신과는 환자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데 어떻게 진실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정신과뿐 아니라 병원에 환자로 내원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진짜 환자가 아닌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의사의 진단과 소견은 금전적인 문제, 법적인 문제에서 중요한 근거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군대의 경우 군의관의 소견은 병사들의 훈련 열외, 중한 경우에는 조기 전역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진짜 환자 사이에 섞여 있는 일부의 가짜 환자들은 이런 점을 파고들어 이익을 취하고자 한다. 증상을 과장하고, 없는 증상을 호소해서 의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다음의 일화는, 그 동안 받았던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이다.
20세의 병사 K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로 진료실에 들어왔다. 병원에 오게 된 이유를 물었더니 종종 귀신이 보인다고 한다. 젊은 여성의 귀신이 자신을 해코지할 것 같아서 무섭고, 이 때문에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환자/병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초등학교 저학년 때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조현병을 강조해 말했다. 학창시절에도 증상이 있었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이겨내고 싶었기 때문에 치료는 받지 않았다. 입대 후 처음에는 잘 지냈지만 어느 순간부터 다시 귀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귀신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났다. K의 벌벌 떠는 모습에 부대에서는 일단 일과를 열외시키고 동료를 한 명 붙여서 언제든 도움을 주도록 했다. 이 외에도 K는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고 마음 속이 굳어가는 것 같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는 등의 정신과적 증상을 호소했다.
부대 생활 기록을 보면, 동료들의 원성이 높다고 한다. 부대 내에서 회식을 하거나, 자유시간을 얻었을 때에는 귀신이 선택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귀신이 보인다는 사람에게 근무를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다들 답답해하고 있었다. 한편 K는 진료를 보는 중에도 귀신이 보인다며 의자에서 일어나 뒷걸음질을 치다가 넘어졌고 일어나서는 내 표정을 살폈다.
K는 정말로 귀신을 보고 있는 것일까? 사람의 마음이 작용하는 방식은 너무도 다양해서 섣부른 판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몇 가지 근거로 미루어볼 때 K가 정말로 귀신을 보고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첫 번째로, 초등학교 때의 조현병 진단이다. 정신병적 증상이 일부 있다고 하더라도 소아에게는 조현병 진단이 잘 내려지지 않는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마음에서는 전형적이지 않은 증상이 충분히 나타나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조현병은 해당 나이에서는 잘 발생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환시이다. 대개의 정신과적 질환에서 관찰되는 환각은 소리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환시를 보는 경우는 정신과적 문제보다는 뇌 자체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
세 번째로, 증상의 발생 양상이다. 정신과적 문제로 환각을 경험하는 경우, 특히 조현병이라면 환각은 특별한 시간대에만 나타나는 일은 결코 없다. 마지막으로, K가 증상을 말할 때 나에게 표현하는 감정이다. 환각을 경험하는 환자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비밀스럽게 증상을 감추기도 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자신이 미쳐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자신의 증상을 적극적으로 묘사하고 중증도 평가를 원하는 K와 같은 사람은 매우, 매우 드물다.
K에게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고 적응을 위해 최대한 노력해 보도록 격려했다. 마음이 힘들어지면 얼마든 도움을 청해도 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방식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조언과 함께였다. 병사를 데리고 온 간부에게는 증상이 악화되면 다시 오라는 말만 했고 따로 특별한 소견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K는 다시 정신과에 내원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