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병동에는 치매를 가지고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입원하시는 경우가 생각 이상으로 많다. 치매는 경과를 어느 정도 늦출 수는 있어도 아직 치료 방법을 찾지 못한 질환이기 때문에, 병원에 입원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 조금 생소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 치매는 단순히 기억을 잃는 질환이 아니다. 뇌가 그 기능을 전반적으로 잃게 되는 질병인데 기억력 문제로 시작된다고 이해하는 편이 보다 정확하다. 기억력 다음으로는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 공간을 파악하고 길을 찾는 능력, 대소변을 가리는 능력 등 일상 생활에 필요한 뇌 기능들을 서서히 상실하게 된다.
치매가 진행하는 과정에서 환자들이 집에 도둑이 들었다거나 누군가가 자신을 해코지하려 한다는 망상으로 인해 고통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충동 조절이 되지 않고 성격이 변하여 자꾸 화를 내고, 주변 사람들에게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수면 각성 주기에 문제가 생겨서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낮에 하루 종일 자기도 한다. 이런 경우 입원과 약물 조정을 통해서 문제가 되는 증상들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증상을 조절하는 것은 환자뿐 아니라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A 할머니는 여든 두 살의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였다.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딸 둘과 아들 하나를 길러내었다. 몇 년 전에 기억력 저하가 시작되어 내원했고 치매로 진단받았다. 지난 외래 기록들은 할머니의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 기능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떨어지고 있음을 말해 주었다. 2년 정도 전부터는 인지 기능이 너무 많이 떨어져 일상 생활을 혼자서 해나가기 어려웠다. 근처에 사는 큰딸과 사위가 할머니를 돌보았다. 할머니의 큰 손주들은 다행히 대학에 진학하여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큰딸은 자식 돌보듯 엄마를 돌보며 지냈다.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함께 내원한 보호자 역시 큰딸과 큰사위였다. 큰사위는 직장 일 때문에 저녁때 잠깐씩 들렀고 주 보호자로는 큰딸이 하루 종일 할머니 곁에 있었다. 큰딸은 걸음걸이가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병동 복도를 산책했다. 30분이 걸릴지 1시간이 걸릴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많은지 남기거나 흘리는 것이 많을지 모르겠는 식사를 함께했다. 병동 가운데 소파에 앉아 함께 TV를 보았다. 할머니의 고개는 TV를 향해 있었지만 TV를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TV가 할머니의 주의를 끌어 주고 있는 동안에 딸은 조금 쉬었다. 할머니의 수면 문제가 심해서 밤을 꼬박 새우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입원 이후에는 수면 관련 약물의 조정이 이루어졌다. 치매가 있는 노인의 경우 수면 관련 약물을 소량만 잘못 사용해도 부작용이 심하기 때문에 입원해서 면밀히 살피며 투약해야 한다. 할머니가 깨지 않고 밤에 주무시는 것만으로도 딸의 삶의 질이 달라졌다.
퇴원을 준비하던 중에 할머니에게 요로 감염이 생겨 입원을 연장하게 되었다. 기저귀를 차고 지내기 때문에 할머니는 요로 감염에 취약한 상태였다. 감염은 생각처럼 잘 조절되지는 않았다. 정맥 항생제를 투여해야 했다. 할머니는 주사바늘을 꽂고 있는 것을 답답해하며 자꾸 줄을 잡아당겨 뽑으려고 했다. 큰딸은 그런 할머니와 함께 평소와 다름없는 일과를 보냈다. 할머니에게 여기저기 문제가 생긴 것이 하루이틀 일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할머니를 돌보아 온 보호자로서의 여유 같은 것이 묻어나왔다. 문제는 입원 기간 중에 처음 보던, 아들이 등장하면서 시작되었다.
내가 할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할머니는 이미 기억의 대부분을 잃은 상태였다. 할머니에게서 의미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었다. 큰딸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대신해 주었다. 그렇게 들은 바에 따르면 할머니에게 둘도 없는 막내 아들이었다. 할머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인이 되고서는 자기 삶을 사느라 집에 잘 와 보지 않았다. 결혼하고서는 그마저도 왕래가 뜸해져, 명절 때나 보는 정도가 되었다. 몇 년 전부터는 회사 일로 가족들과 함께 외국에 나가 있다고, 입원 초에 진행한 보호자 면담에서 들은 기억이 있었다. 병실에 와서 얼마쯤 있었을까. 할머니의 아들이 병동 스테이션으로 와서 담당 의사를 찾았다.
나를 찾는다는 연락을 받고, 의료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려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에도 몇 번씩 상태를 체크하며 정말로 열심히 할머니를 진료하고 있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주 보호자인 큰딸도 의료진에게 입버릇처럼 고생이 많다는 인사를 건네곤 했었다. 그런데 펼쳐진 상황은 나의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아들은 언성을 높여서 나에게 항의했다. 몇 년 전에 본 할머니는 이런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걷는 데도 이상이 없고 밥도 잘 먹던 사람을 왜 바보를 만들어 놓았느냐, 정신과 약을 먹여서 사람을 반병신을-실제로 들었던 단어이다-만들어 놓았느냐 하는 분노에 찬 비난이 이어졌다. 당신들은 보호자에게 치료 과정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았다, 이 따위로 진료를 하고 병원비를 받아먹으려 하다니 양심이 있느냐, 당신은 이런 대형 병원에서 근무할 자격이 없는 의사가 틀림없다 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안이 벙벙했다. 결국에는 사람을 이렇게 만든 것도 모자라서 기본적인 환자 관리도 제대로 못 해서 요로 감염까지 생겼으니 당신을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나를 위협했다. 부족한 실력으로 환자를 망쳐 놓은 의사라는 걸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리고-인터넷 카페에도 올리고 언론에도 제보하겠다고 말했다-병원에 이야기해서 보상을 받겠다고 악을 썼다.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아들은 어머니를 간병해 오고 있던 큰누나에게도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엄마를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의사랑 작당해서 돈을 빼돌렸느냐고, 별의 별 이야기가 다 나왔다. 입을 열 기회도 주지 않고 십몇 분을 몰아붙인 아들은 휙 하고 병동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리고 그 뒤로 얼마간은 병동에 꽤 자주 찾아와서 노기 등등한 모습으로 할머니 곁을 지켰다. 아들이 옆을 지키고 있는 동안은 할머니에 대한 처치나 진료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회의감이 밀려왔다. 내가 지금껏 무슨 일을 하고 있었던가 싶은 생각으로 가득했다. 큰딸 역시 적지 않게 상처받은 눈치였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다가 왜 이제와서 왈가왈부 하느냐고 소리를 질렀지만 남동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남동생이, 할머니의 아들이 병동을 떠나고 나면 스테이션에 와서 의료진에게 사과하며 뒷수습을 하는 것 역시 큰딸의 몫이었다. 아들의 등장으로 모두가 불편해졌다. 저 사람은 도대체 왜 갑자기 와서 저러나, 언제 다시 출국을 하나, 할머니 퇴원 때가 되면 또 얼마나 병동이 시끄러워질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마주치고 싶지 않던 그 아들을 우연히 보게 된 것은 병원 흡연장에서였다. 동기 형이 퇴근길에 담배를 한 대 태우고 가야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통에 평소에는 갈 일 없는 흡연장에를 가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한 것이었다. 깜짝 놀라서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숨겼다. 다행히 아들은 나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병동에서 그렇게 모두를 힘들게 만드는 몰상식한 사람이 밖에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놀랍게도 아들은 울고 있었다.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병동에 다녀간 것이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혼자 있을 때의 아들은 병동에 있을 때처럼 위협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훌쩍이는 모습은 조금 애처롭기까지 했다. 그래, 그런 마음이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씁쓸하게 흡연장을 빠져나왔다.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아들은 이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병동에서 사소한 일에도 트집을 잡고 목소리를 높일 준비를 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가 자리를 비울 때면 내가 흡연장에서 본 그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불효자는 울지 않는다. 우는 대신에 화를 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