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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기린 Sep 23. 2022

웬만해선 이 아이를 막을 수 없다

초등학교에서 3학년 담임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있는 친구에게서 연락을 받았었다. 반에 지도가 너무 어려운 남자아이가 한 명 있다고 했다. 한 명에게 쏟는 에너지가 나머지 학급 전체에 쏟는 에너지보다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떻게 해도 아이를 통제할 수가 없어서 학부모님에게 정신건강의학과 내원을 권유하려 하는데 올바른 방향인지 묻고 싶다고 친구는 말했다.


문제의 주인공인 A는 이미 1, 2학년 때부터 선생님들 사이에서 유명 인사였다. 문제가 생기는 곳마다 A가 있었다. 먼저 친구들과의 문제가 가장 심각했다. A의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인해 친구들과의 관계는 나빠질 대로 나빠져 있었다. 놀이를 하면 규칙을 지키는 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함부로 자르고 끼어들었다. 줄은 새치기를 하라고 있는 것이었다. 친구들과의 싸움으로 번질 뻔한 일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친구들의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가고는 돌려놓는 일이 없었다. A의 손에 들어간 물건은 대체로 사용법과는 전혀 다르게 쓰여 이내 망가지곤 했다. 학급 아이들이 모두 A를 피했다. 담임 선생님은 온종일 A에게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러나 A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불러서 타이르고 혼도 내 보았지만 듣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면 A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중간에 딴소리를 했다. A의 태도 때문에 지도하는 담임 선생님 본인이 약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A의 도가 넘는 장난 역시 지켜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난간에 올라가서 떨어질 뻔한 일이 이미 여러 번이었고 한 번은 결국 떨어져서 병원에 가기도 했다. 책상과 의자를 뒤집고 어질렀다. 수업 시간에는 전혀 집중하지 않았다. 드러내 놓고 하는 딴짓에 수업 분위기가 유지될 수 없었다.


나의 친구가 담임을 맡게 될 때 동료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조언과 격려는 모두 A에 관한 것이었다고 한다. 나이 지긋하신 선생님도 젊은 초임 선생님도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새 학급을 담당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내 친구도 A의 문제행동으로 인해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받게 되었다. 차분하게 잘 지내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러나 A는 마치 다리에 모터가 달린 것처럼, 지치지도 않고 하루 종일 말썽을 피우고 다녔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 가지 감별해야 할 진단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분명 정상 범주를 벗어난 경우였기 때문이다. 다만 아이들의 행동 문제가 있을 때 고려해야 하는 것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지능의 문제, 사회성의 문제, 양육 환경, 신체적 질환 여부, ADHD 또는 적대적 반항 장애와 같은 정신과적 문제 등등. 이야기만으로 정확한 상태를 알기는 어렵지만 진료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은 확실하다고 답변했다.


얼마 뒤 다시 물어보니 다행히 A는 소아정신과에 내원해 진료를 받았다고 했다. A를 직접 진료한 의사는 A를 보자마자, 검사를 해 보기는 하겠지만 ADHD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약물치료와 가정에서의 환경 변화에 대한 처방이 있었고 몇 주 뒤에는 이전과 비교해 꽤 많이 차분해졌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듣게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다운 개구쟁이같은 모습은 여전했지만 새치기도, 끼어들기도, 위험한 장난도 많이 줄었다. 수업 시간을 지루해했지만 이전처럼 자리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제 A가 다시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도록 돕는 일만이 선생님에게 남아 있었다.


ADHD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글과 정보가 넘쳐난다. 그러나 인터넷의 정보들은 대개 단편적이어서,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어른들의 기운을 소진시키는 그런 아이들에 대한 묘사로만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단 기준은, 읽어 보면 누구나 다 자신이 ADHD가 아닌지 의심해보게 만든다. 하지만 ADHD의 실제 생활에서의 모습은 진단 기준이나 인터넷의 글을 통해서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는 것과는 다른 경우가 많다.


충동 조절 능력의 결핍은 새치기, 다른 사람의 말 자르기 등으로 이어져 아이를 배려심이 부족한 사람으로 보이도록 만든다. 집중력 부족은 선생님의 말을 잘 듣지 않는 - 사실은 듣지 못하는 것인데 - 아이를 반항아로 보이게 한다. 이렇게 학급에서 친구들에게 소외당하는 문제아, 선생님 말을 듣지 않는 반항아가 사실은 ADHD 환아일 수 있다.


또래 친구들과 다른 점이 많고 이것이 걱정스러울 정도라면 그것만으로도 진료를 받아볼 이유는 충분하다. 정신과적 문제 자체는 조금 나중에 치료를 받아도 호전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정신과적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동안 형성되는 아이의 성격, 아이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경험해야 할 문제들과 상처는 시기가 늦으면 되돌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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