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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기린 Jun 10. 2022

좋은 배우자를 찾는 비결

친한 친구가, 취미생활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얼마 전 있었던 모임에서 선배 N형의 결혼생활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모임 구성원의 대다수가 미혼인데다 결혼을 생각 중이기도 했기 때문에 질문이 적지 않았다. 특히 다들 궁금해했던 것은 N형이 왜 결혼을 결심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어떻게 해서 지금의 아내와 평생을 함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는지, 아내의 어떤 점이 형을 그렇게 만들었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N형의 답변은 매우 체계적이고 구체적이었다. 여러 이유 가운데 N형이 특히 강조한 것은 첫 번째로 아내에게 함께하는 친한 친구들, 표현을 빌리자면 ‘진짜 친구들’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두 번째는 취미생활이 있다는 점이었다. 뜨개질을 매우 좋아해서 한 번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걱정거리도 다 잊는다고 한다. 관계를 지속해 나가고 있는 좋은 친구들, 그리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자신만의 취미 생활이 있다면 삶을 함께하기에 충분히 튼튼한 마음을 가진 사람일 것이 틀림없다고 N형은 힘주어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점점 어디서 본 것만 같은 익숙함을 느꼈는데, 곰곰 생각해 보니 정신분석학 교과서에서 읽은 내용이었다. 형이 이야기한 아내의 모습들은 정신의학에서 사람의 성격 구조가 얼마나 안정적인지(자아 강도, ego strength)를 파악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내가 공부를 거듭해 이제 겨우 지식으로나마 알게 된 내용을 이미 삶의 지혜로 녹여내고 있는 모습에 존경스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형의 이야기에 굳이 이론적인 배경을 조금 더 붙여보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좋은 친구들의 존재는 인간 관계에서의 전반적인 안정성을 의미하는 훌륭한 지표가 되어준다. 인간은 발달 과정에서 애착, 기본적인 신뢰, 감정 조절 능력 등 타인과의 관계에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을 체득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나간다. 이것은 마치 운동을 맨 처음 배울 때 자세를 익히는 것과 같아서, 한 번 형성된 자세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굳어져서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감정을 공유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관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이러한 기본 자세가 안정적으로 잡혀 있음을 말해준다. 배우자와의 관계가 어떤 관계보다도 깊고 복잡한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기본 자세의 응용임을 생각할 때, 깊고 친밀한 교우관계가 나중의 결혼 생활을 예상하는 데 있어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취미 활동의 존재는 감정적 안정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견디는 능력이 다른데 이것은 마치 스트레스를 담을 수 있는 물탱크와 같아서 물탱크에 물이 가득 차면 결국 넘쳐서 난리를 겪게 된다. 통의 용량이 작은 사람은 작은 스트레스에도 견디기 어려워한다. 쉽게 화를 내거나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가해야 한다. 용량이 큰 사람은 어지간한 일에도 물이, 스트레스가 넘치지 않아서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담아낼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의 용량을 스트레스 내성(stress tolerance)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용량은 타고난 기질과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는 것이므로 단기간에 키우기가 쉽지 않다.


스트레스에 대처하고 감정적인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당장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이 물탱크에 물이 빠질 수 있는 구멍을 뚫어 주는 것인데, 바로 이것이 취미생활,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다. 마음의 용량이 작더라도 건강한 취미가 있어 쌓이는 스트레스를 줄여 준다면 넘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람의 성격 구조는 대인 관계와 스트레스 내성으로만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교우 관계가 원만하고 취미생활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배우자인 것은 아님은 물론이다. 수많은 다른 요소들이 성격의 형성에 기여하며 개개인의 특성과 장단점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좋은 배우자, 나에게 맞는 배우자를 찾는 데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다만 N형이 덧붙인 말과 같이, 사람마다 스스로의 성격을 돌아보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기준을 올바르게 세우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리라고 생각된다.


그나저나 형의 통찰력 있는 이야기에 주석을 달면서, 정신의학은 삶의 지혜를 체계화한 학문이라고, 그리고 그것을 굳이 공부해야만 아는 정신과 의사들은 지혜를 지식으로 가지고 있는 덜떨어진 사람들이라고 즐겨 말씀하시던 은사님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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