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문제는 상담을 받아야 할까요, 약물치료를 받아야 할까요?"
인터넷 게시판에 종종 올라오는 정신의학적 난제입니다. 답변이 어려운 이유는 가장 먼저 짧은 글만을 바탕으로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 있습니다. 정신과적 치료 가운데 상담과 약물치료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담을 받으면 이렇다더라, 어디어디에서 약물치료를 받았는데 괜찮았다, 정도의 댓글들이 질문자의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상담이 낫다, 약물치료가 낫다, 갑론을박을 벌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상담이 필요하고 어떤 상황에서 약물치료가 필요한지에 대한 인상을 가진다면 치료 방향과 관련한 혼란을 줄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직관적인 비유가 이해에 도움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저의 은사님께서 즐겨 말씀하시던 내용을 조금 각색해 보았습니다.
정신과적 치료는 바다에 떠 있는 배 위에서 탑을 쌓을 수 있도록 돕는 일과 같습니다. 안정적으로 탑을 쌓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로 바다가 잔잔해야 합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배가 흔들린다면 탑을 쌓을 수 없겠죠. 두 번째로 탑을 쌓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탑의 설계도를 공부한 사람과 함께 탑을 쌓는다면 수월하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약물치료는 위와 같은 상황에서 폭풍우를 잠재워 주는 역할을 합니다. 우울, 불안, 조증, 환청이나 망상 등의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안정적으로 삶을 바라보고 영위해 나갈 수 없습니다. 폭풍우가 심할 때, 배 위에 있는 우리는 탑을 쌓기는커녕 혼자서 서 있는 것만도 벅찹니다. 따라서 탑 쌓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폭풍우가 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약물치료를 통해 폭풍우가 가라앉았다면, 혹은 비바람이 심하지 않은 상태라면 이제 상담 또는 심리치료라 불리는 과정을 통해 치료자와 함께 탑을 쌓아 나갈 수 있습니다. 약물치료는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해 주지만 탑까지 쌓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반복되는 대인 관계의 문제, 만성적 공허감 등의 문제를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해결해 나갑니다.
이렇듯 상담과 약물치료는 반대되거나 혹은 상충되는 치료 과정이 아닙니다. 둘은 상호 보완적입니다. 함께 이루어질 때 가장 안정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폭풍우가 칠 때 탑을 쌓을 수 없습니다. 바다가 잔잔하더라도 탑을 쌓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정신과는 상담과 약물치료의 좌우 날개로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