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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거운 기린 Nov 19. 2023

항우울제는 '기분 좋아지는 약'이 아닙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를 받는 많은 분들이 항우울제를 처방받아서 복용하는데 왜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지를 궁금해하시곤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간의 오해와는 달리 항우울제는 기분을 끌어올려 주는 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제가 진료실에서 드리는 설명을 적어 보려 합니다.


항우울제는 해열제와는 다릅니다. 해열제는 복용하고 나서 30분 정도가 지나면 열이 내리고 편안해지지요. 사람들은 항우울제를 복용할 때 해열제처럼 빠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하곤 합니다. 그러나 항울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항우울제는 근골격계 질환에서 사용하는 진통 소염제와 조금 더 닮아있습니다. 운동을 하다가 어깨 관절에 문제가 생겼을 때 진통소염제를 복용하면 증상이 줄어들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절이 곧바로 다 나아서 원래대로 운동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통증과 염증이 줄어들면 회복 과정을 견디기가 수월해지고, 또 기능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는 적절한 재활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진통 소염제의 사용 이유입니다. 통증이 계속된다면 회복을 위해서 필요한 올바른 자세를 연습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마찬가지로 항우울제를 복용한다고 해서 곧바로 기운이 나고 일상생활을 모두 잘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항우울제 역시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만성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우리의 뇌세포는 재생성이 느려지고 심지어는 죽게 되는데, 항우울제는 이런 과정을 막아 줍니다. 진통 소염제가 염증을 줄여 주어서 회복 과정을 돕는 것과 비슷하다고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변화를 바탕으로 뇌 영역의 활동에 변화가 생깁니다. 또 부정적인 자극에 대한 민감도가 줄어들고, 긍정적인 자극을 보다 쉽게 수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올바른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되면 긍정적 경험이 누적되고 감정에 대한 '재활' 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됩니다.


회복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지만 우울의 늪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이 시간은 너무나도 길게 느껴지곤 합니다. 이 글이 회복의 시간을 견디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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