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이룬 Oct 29. 2022

까맣고 하얀 것들이 주는 기쁨

지콜라의 메시지

열심히 일하느라 지친 날, 뭔가 가슴이 답답한 날, 모든 일이 내 맘대로 굴러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어요. 뭔가 땅 파고 들어갈 만큼 절망스러운 날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처지는 날 말이에요. 그럴 때는 뭘 하며 기분을 푸시나요?


어떤 사람들은 좋아하는 술을 마시거나 맛있는 음식을 왕창 먹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시끄러운 음악을 틀고 춤을 추기도 합니다. 물론 저도 좋아하는 음식 먹는 시간을 아주 좋아해요. 다만 타고난 소식가여서 스트레스 푸는 느낌은 잘 들지 않네요. 좋아하는 먹방 유튜버가 있는데, 맛있는 음식보다도 늘 그 대단한 소화력을 부러워하기 바쁘답니다.


우울한 날이든 평범한 날이든 제가 한 가지 매일 빼먹지 않고 하는 일이 있어요. 하루를 마무리하고 침대에 누워서 하는 일이지요. 침대 위에서 푹신한 베개를 베고 이불을 덮은 뒤 핸드폰을 들고 어플을 켭니다. 오늘 볼 것을 선택하고 편안한 밝기로 화면을 조정하면 준비 끝. 유튜브를 보냐고요? 아뇨, 바로 소설을 읽는 시간입니다. 특히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무조건 밝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어요. 특히 재미있었던 글을 다시 읽기도 하고요.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등장인물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면서 행복한 기분을 느끼다가 잠을 청하곤 합니다.


물론 눈 건강에는 하나도 좋을 것 없는 습관인 데다 가끔은 너무 몰입한 나머지 계속 읽느라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기도 해요. 하지만 자기 전 글 읽기는 어느새 제게 떼어놓을 수 없는 습관이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글을 읽고 쓰는 직업인데 자기 직전까지 또 글을 보다니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도 아주 자연스럽게 글을 읽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이런 습관은 꽤나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였어요. 매일 열 시까지 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나날은 힘들었고 늘 사소한 고민에 빠져 있었죠. 아마 사춘기였나 봐요. 원래도 도서관을 좋아해서 학교 도서관에도 종종 가곤 했는데, 거기서 책을 하나둘 읽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낯선 감정을 느낀 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었을 때였어요. 읽은 지 너무 오래되어서 지금은 내용도 자세히 생각나지 않건만, 그때 받은 느낌만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지금껏 알지 못했던 세계에 푹 빠져들었다가 나온 느낌이요. 내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그 세계를 온전히 느끼고 감동하는 기분이었죠. 그 뒤로 소설은 고등학교 시절 내내 힘든 시간에서 잠시 벗어나는 작은 도피처가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감수성 풍부한 사춘기 소녀의 알 수 없는 감성 같아서 낯간지럽지만, 결국 그 시간이 책을 만드는 직업으로 이어진 셈입니다. 다만 일로 소설을 읽고 고민하다 보니 취미로는 무거운 소설을 잘 읽지 않게 되었어요. 그러다 어쩌다 웹소설의 세계를 접하고 푹 빠져들었지요. 지금은 판타지, 무협, 현대물 등등 가리지 않고 골고루 읽는 독자가 되었습니다.


어찌나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한지, 소설 속 세계를 유영하는 순수한 즐거움을 새삼 깨달은 느낌이에요. 겉으로는 검은 화면 속 하얀 글씨들일 뿐이지만(주로 밤에 읽어서) 말이에요. 가끔은 지나치게 감정 이입해서 조금 힘들 때도 있지만 언제나 더 큰 즐거움이 있습니다.


만약 무슨 소설이 재미있는지 궁금하시다면 추천해 드릴게요. 소곤소곤.

이전 07화 내가 하이힐을 신지 않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