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키의 답장
기분에 따라 다양한 소설을 읽을 수 있는 습관이 부럽네요. 저는 소설을 고를 때는 이미 정해져 버린 취향대로 선택하는 편이라 늘 비슷한 책을 읽는 것 같아요. 소설 이야기가 나오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렉싱턴의 유령》에 수록된 단편 소설 <토니 타키타니>가 떠오릅니다. 731벌의 옷만 남기고 죽은 부인의 자취를 찾는 남자 이야기로 고독과 상실의 감정을 하루키 스타일로 풀어낸 소설인데요. 토니의 아내인 에이코는 마치 옷을 입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옷을 사는 것을 멈출 수 없고 예쁜 옷을 보면 사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옷을 사고 입는 행위 자체가 에이코의 고독한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옷을 특별히 잘 입는 사람이 아닌 저도, 옷을 통해 저의 기분을 드러내곤 합니다. 기분이 살짝 좋을 때는 나팔바지 같은 부츠컷 데님이나 우스꽝스러운 프린트가 그려져 있는 티셔츠로 코디에 유머 한 방울 떨어뜨리고, 자존감이 떨어져 있을 때는 쨍한 비비드컬러 옷으로 화려하게 치장하여 속마음을 감추기도 합니다. 물론 이는 온전히 저만의 생각으로 누군가가 봐주기를 바라거나 하는 것이 아니고, 표현하고 싶은 저의 욕구라고 할 수 있죠.
옷은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 사람의 첫인상을 좌우하기도 하고 라이프스타일을 드러내기도 하는 수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와 마크 저커버그는 매일 똑같은 옷을 고집한 것으로 유명하고, 친환경과 지속가능한 패션을 추구하는 다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는 자신의 신념에 들어맞는 제품을 만들고 있지요. 그래서 왠지 창의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날은 스티브 잡스처럼 무늬 없는 티셔츠와 청바지로 심플하게 입기도 하고, 센치한 날은 빈티지 샵에서 구매한 구깃구깃하고 헌 느낌이 나는 코디를 하기도 해요. 중요한 자리에 갈 때는 액세서리를 평소보다 많이 착용해서 존재력을 과시합니다. 과시의 이유는 다르지만, 수컷 공작이 꽁지를 펼쳐 자신을 과시하는 느낌과 비슷하달까요?
매일의 자기 생각과 기분을 드러내는 데 패션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패션의 ‘패’자도 몰라도 옷은 매일 입어야 하니까 적극적으로 저의 감정과 기분을 표현하는 데 활용하고 있어요. 한파가 찾아온 오늘의 기분은…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예요.(웃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아무거나 주워 입은 것처럼 허벌레한 베이지색 고무줄 바지에 화이트 오버사이즈 터틀 스웨터를 입고 있어요. 편안~합니다. 양말도 조이지 않는 수면 양말을 신었고요. 옷을 잘 못 버려서 오래전에 산 옷도 여전히 잘 입어요. 유행이 순식간에 바뀌는 요즘, 촌스러워 보이지 않을까 할 때도 있지만, 뭐, 생각보다 사람들은 타인의 복장에 대해 별 상관을 하지 않는 것 같고 또 누가 뭐라면 좀 어떤가요 무시하면 그만이죠. 오히려 제가 입은 옷을 보고 제 기분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분은 저의 소울메이트일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