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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룬 Oct 29. 2022

오랜만에 바깥 공기 좀 마셔볼까

정이룬의 답장

저도 고민 없이 책을 집어 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책을 고를 때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거든요. 다행히 최근에 절충안을 찾았습니다. 아침에는 인문서, 밤에는 소설을 읽는 것으로요. 침대맡에 둔 책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찬가지로 침대에서 책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그러다 보니 침대에 머무르는 시간이 제법 긴 데다, 일도 집 안에서 하기 때문에 생활반경이 몇 미터 되지 않는 하루를 보냅니다. 하루 내내 집에만 머무르는 날도 많고요. 따라서 집에서 나가는 것은 저에게 일상적이지 않은 일, 특별한 일입니다.




그래서 기분을 내고 싶을 때 혹은 기분을 전환하고 싶을 때에는 집을 나섭니다. 행선지는 늘 달라요. 자주 가는 곳은 카페겠네요. 마음이 허전한 날에는 볕이 잘 드는 카페에 갑니다. 햇빛이 내리는 자리를 골라 앉아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을 바라보기도 하고, 햇살에 데워진 테이블을 손으로 만지작거리기도 합니다. 따뜻해서 기분이 좋습니다. 테이블을 만지던 제 손등에 내리쬐는 햇빛과 그늘의 모양이 눈에 들어와요. 그리고 햇빛을 가린 것이 무엇인지 눈으로 근원지를 따라가요. 간판일 때도 있고 가로수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낮볕을 받던 제 몸도 따뜻해져 있고, 허전한 마음도 녹아 있습니다.


의욕이 부족한 날에는 점심시간쯤 카페에 갑니다. 점심때 북적북적한 그런 카페요. 누군가 들어오는데 뒤통수만 보입니다. 뒤따라오는 직장 동료와 떠들며 입장하네요. “'아아' 마실 거지?” 하는 모습을 보니 점심시간에 함께 커피 마시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이인가 봐요. 피곤해서 카페인이라도 수혈하려는 것인지, 점심때 마시는 식후 커피가 하루의 낙인 것인지, 다들 어떤 마음일지는 모르겠으나 가만히 앉아 보고 있는 입장에서는 활력을 느낍니다. 웃고 떠들며 주문하는 모습이 조금 전에 주문하던 제 모습과는 확연히 달라요. 저도 일행과 함께라면 좀 더 들뜬 모습으로 주문했겠지요. 누구나 혼자 있을 때와 누군가 함께 있을 때의 텐션이 다른 법 아니겠어요? 점심 시간대에 커피를 사러 온 손님 무리가 몇 차례 오고 간 다음, 카페의 데시벨은 눈에 띄게 낮아집니다. 분위기가 달라진 카페를 둘러보면 둘, 셋이 앉아 대화를 나누는 테이블과 홀로 앉아 무언가에 몰두하는 테이블이 보입니다. 무얼 하고 있는 걸까요? 태블릿PC, 노트북, 책, 저마다 무언가 올려두고 집중하고 있습니다. 동적으로 점심시간 한때를 누리는 직장인들과 조용히 제 할 일을 하는 사람들, 을 관찰하고 있는 나. 퍼뜩 ‘나도 이럴 때가 아니지.’ 하는 생각에 긴장감이 듭니다. 이 적당한 긴장감은 의욕을 북돋아 주기에 좋아합니다. 분명 오늘 하루를 마감할 때까지 강력하게, 그리고 당분간은 은은하게 효력을 발휘할 거예요.


가끔 실내 자체가 싫증 나는 날도 있어요. ‘코에 바람을 넣어줄   것입니다. 그럴 때는 제대로 바람 넣으러 공원에 갑니다.  근처 공원의 벤치에 앉아 무언가를 읽을 때도 있고, 한강 공원에 돗자리를 펼치고 앉아 야외 카페를 즐길 때도 있어요. 야외 카페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직접 내린 커피와 홈메이드 디저트입니다. 가장 즐겨 들고 갔던 것은 티라미수예요. 시간   만들어 냉동실에 넣어두기 때문에 필요할 때는 잠들어있던 티라미수를 꺼내면 그만이에요. 마실 것과 티라미수를 들고 집에서 멀지 않은 한강 공원에 향해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일도 하고  트이고 푸릇푸릇한 경치 구경도 하다 보면 티라미수가 적당히 녹아 있습니다. 티타임에 들어가기  좋은 시간이 됐다는 뜻이죠. 공원에 가는 이유는  하나 있어요. 바로 귀여운 강아지들을 만날  있다는 . 무표정을 지키고 지나가는 강아지들을 몰래 귀여워하고는 해요. 어쩌다 저에게 관심을 바라는 강아지와 강아지 주인이 다가오면 속으로 기쁨의 탄성을 지르고 무표정을 풉니다. 이때가 기회예요. 만지고, 예뻐하고, 귀여움을 만끽합니다. 요란한 만남 뒤에 기분 좋은 인사를 나누고 그들을 보내요. 아찔하게 귀여운 강아지의 뒤태를 바라보며 여운을 느끼다 다시 일거리로 눈을 돌립니다. , 최고의 근무 환경이에요!


언제부터인지 저는 혼자가 편한 사람이 되었어요. 현재는 본가를 나와 저만의 보금자리를 꾸리고 살고 있고, 일도 누구를 마주할 필요 없는 일을 하고 있네요. 그만큼 혼자 있는 집이란 공간이 너무 익숙해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기분 낼 때의 특별함은 바깥에서 얻을 때가 많아요. 기분을 내러 해외까지 나갈 필요도 없어요. 집 근처 카페라도 저에겐 특별한 외출이에요. 많은 자극을 받아요. 가끔 누리는 그 자극이 기분 좋습니다. 누군가는 즐거움을 위해 다양한 소설을 읽고 옷을 고르듯, 저에게는 외출이 그렇습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행선지를 고르죠. 그리고 그곳에서 그날의 마음을 가다듬기도 하고 새로운 기분을 얻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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