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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룬 Oct 29. 2022

여러분의 110시간은 안녕하신지요

정이룬의 메시지

날이 추워지면서 그동안 미워했던 마스크가 고마운 요즘 같은 때, 한 해의 끝이 성큼 다가온 기분이 듭니다. 덩달아 생각도 많아져요. 시작은 “올해 뭐 했지?”라는 가벼운 의문이 후회라는 감정로 바뀌는 것도 한순간이고요. 그리고 후회를 느낀 순간부터 후회의 기록을 살피는, ‘후회의 시간’이 뒤따라옵니다.


후회의 시간에 떠오르는 의제는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매번 등장하는 ‘스테디셀러’ 같은 후회도 있습니다. 실천심리학의 대가 아들러가 말했던가요. “모든 문제는 인간관계에서 비롯한다.”라고. 맞는 말입니다. 저는 인간관계에 얽매였던 시간을 자주 후회합니다. 다른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에너지를 많이 쓰던 시절, 자신의 행복이 인간관계에 있다고 착각하던 시절을요. 인간관계는 혼자 열심히 한다고 되는 영역이 아닌데 왜 그렇게 혼자 기를 쓰고 열심히 했을까, 왜 행복의 주권을 스스로 타인에게 쥐여주었을까, 이런 후회가 떠오르죠. 또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 싫을 때 싫다고 아플 때 아프다고 말하지 못한 순간들을 후회합니다. 당신의 말이 나를 찌른다고, 당신의 행동이 나를 괴롭게 한다고 표현하지 못한 순간들이요.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매년 110시간을 후회하는 데 사용한다고 합니다. 저는 남들보다 후회를 더 많이 하는 편인 것 같으므로 평균 시간을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을지 모르죠. 예전에는 무언가를 후회하는 버릇을 줄이고자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지 말자고 다짐할수록 더욱 떠오르고 멀어지기가 힘든 법. 타고난 성향을 제어하고 거스르려고 한 것 자체가 무모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후회라는 감정을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기로 했어요. 후회라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으려 아등바등하기보다는 차라리 저를 위해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후회를 원동력의 먹이로 쓰는 방식으로요.


예전에는 후회되는 일이 불쑥 떠오를 때마다 자신을 자책하며 채찍질하는 순서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남는 것은 더 깊은 후회와 괴로운 감정밖에 없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자신을 나무라기보다는 다음에는 그러지 않겠다는 반성과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겠노라고 다짐을 합니다. 설령 나중에 다짐대로 일이 풀리지 않더라도, 이 또한 또 한 번의 시행착오로 여기고 다음에는 또 어떻게 할지 골똘히 생각합니다. 그럼 감정이 아니라 상황에 집중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감정에 사로잡히는 일이 줄어들거든요. 후회를 이런 식으로 대하기 시작하면 때로는 후회가 별것 아닌 감정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요. 내가 머리 싸매고 과거의 나를 책망하고 혼낸다고 해도, ‘당신은 참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이군요!’ 하며 알아줄 사람 하나 없는데, 뭘 그렇게 열심히 힘들어했나 싶기도 하고요.


살면서 후회되는 일이 없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일반화를 하고 싶네요. 인간은 살면서 평균적으로 7,994시간을 후회하는 데 사용한다고 하니까요. 여태까지 저는 그중에 몇 시간을 부정적으로 소비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저의 성장을 돕는 양분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바닥에 떨어뜨렸던 수천 시간을 다시 호주머니로 되찾아온 기분이랄까요. 삶의 질도 올라갔고요. 제 안의 감정과 엎치락뒤치락 싸울 일도, 과거의 실망스러운 자기 모습을 탓할 일이 없으니 말이에요. 세상에 싸울 일이 얼마나 많은데 자기 자신과도 싸울 생각을 했다니……. 이제 보니 바보 같은 행동 같아서 ‘후회돼요.’ 하하.


저는 이제 후회하지 말자는 강박에서 벗어나, 후회가 되면 그냥 합니다. 오늘 고개를 드는 후회는 매년 찾아오는 주제예요. 인간관계. 저를 계속해서 상처 준 사람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싫은 내색은커녕 계속 친절하게 대한 것이 후회되거든요. 그래도 괜찮아요. 그런 상황과 관계가 몇 년이 지나도 이토록 슬픈 감정을 남긴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기에, 앞으로 저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저도 친절함을 거두겠다고 마음먹는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이렇게 쓰고 보니 후회라는 탈을 쓴 복수극 같네요. 저 그렇게 무서운 사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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