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27
“지금도 어느 모로 보나 내가 모든 걸 완전히 갖춘 사람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저 나의 삶을, 우리의 삶을 한 걸음씩 나아가면 우리의 시간을 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내가 결혼했을 때를 기준으로, 나는 아마 결혼정보회사에 갔으면 최저 등급이었을 것이고, 누가 봐도 남들과 비교했을 때 괜찮은 조건인 사람 따위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삶을 살고자 늘 애썼고, 그저 나의 삶에 충실한 나의 삶을 살았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장마도, 폭풍우도 지나가며, 나의 날씨를 만날 날들이 찾아올 거라 믿는다.”
정지우 <나의 날씨를 만들며 나의 삶을 살기> @jungjiwoowriter
단골 카페에 왔다. 이 가게의 오랜 단골인만큼 나와 얼굴을 익힌 다른 손님들이 몇 있는데, 그중 오늘은 24살의 친구와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녀의 우울 짙은 고민을 듣고 나니, 나의 20대가, 특히 허공에 삽질했던 그 무수한 시간들이 떠올랐다. 가까운 친구들에게 조차 고하기 힘든, 부끄러운 삽질의 역사가 있는데, 어느새 언제 그 시간을 지나왔나 싶을 정도로 까맣게 잊고 살고 있는 나를 문득 발견했다.
오롯한 내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나조차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던 시기였다. 타인의 시선을 빌려 내 모습을 바라보았고, 그 안에서 내가 될 수 있는 가장 그럴싸한 모습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내가 선택한 것들이 몰고 온 폭풍우를 홀로 감내하는 건 힘이 들었다. 그렇게 뒤덮인 시간은 불안했고 삶의 주도권마저 잃은 듯한 적이 있다. 도피한 건지 이겨낸 건지 헷갈릴 때가 있지만 어쨌든 그렇게 돌고 돌고 또 돌아 겨우 지금의 내가 되었다. 폭풍이 지나간 뒤 잔잔한 바다 위에 떠 있는 것만 같은 안온한 시간 뒤켠에, 지나온 구불구불했던 길을 뒤돌아보면 이제는 그저 희미한 점이 되어 버린 것들이 더 많다.
그렇게 불온의 감각과는 조금 멀어진 지금의 내가, 외로운 시간을 걷고 있는 어린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많이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건네다 문득 어떤 말을 해도 닿지 않을 것 같아 결국 대충 얼버무렸다.
아쉬움이 남았다. 하루하루 삶에 충실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만의 날씨를 만날 날이 올 거라는 말을, 뻔하지 않게, 조금 더 따뜻하고 현명한 어른의 말로 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
이런 착잡한 마음을 남자친구에게 살포시 꺼내놓은 끝에 얻은 결론은,
내가 건넨 말이 타인에게 반드시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부담도, 변화를 줄 수 있을 거란 기대도 가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
받아들이고 말고는 저마다 가진 타이밍의 문제다. 남들이 아무리 좋다는 책을 열심히 읽어봤자 내가 준비되어있지 않으면 와닿는 게 없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 우연히 만난 문장 하나에 문득 마음이 울리는 건 그때의 내 마음이 필요로 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타이밍 좋게 만나 눈에 띈 것뿐, 그때가 아니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 또한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나대로, 나의 삶을 사는 것.
그는 그대로, 그의 시간을 살아낼 것이라 믿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