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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 May 15. 2023

어서오세요, ___님! 캐나다 맵 입장은 Enter를

퇴사 후 캐나다 워홀 출국까지

인생이 심즈라면


'아... 나 어떡하냐.'


출국 전 마지막 밤, 잠들지 못한 나는 겨우 눈만 감은 채 그 고요한 방 안에서 세상 치열한 사색에 잠겨있다. 반쯤 채워진 캐리어 옆엔 욕심부린 탓에 다 들어가지도 않을 법한 양의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고, 그 옆엔 짐을 싸다 지친 내 한 몸이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엉켜 (상상 속으로) 이불을 마구 차고 있다.


질기게 엉킨 이 사색의 실타래를 한 끝부터 차근차근 풀어보자면, 그러니까 이건 퇴사한 지 며칠 안되었을 무렵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조용한 방 안에서 가만히 누워 있자니 대로변을 오가는 차소리가 창문 너머로 흐릿하고, 그제서야 병아리처럼 가냘픈 내 숨소리가 거슬렸다.


'가만히 누워있는데 왜 이렇게 숨 쉬기가 힘들지?'


장기화된 스트레스로 삐걱대던 몸뚱이는 이곳저곳에서 신호를 보낸 지 오래였고 그때그때 어설픈 임시조치로 꾸역꾸역, 그리고 지금 이런 상태가 된 것이었다. 어디서 뭘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았느냐고 묻는다면 외부적인 건 굳이 덮어두자. 뭐, 누구든 상황이 내 마음대로 따라주는 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니까, 그래서 그걸 행운이라고 하는 거겠지.


'너무 못했어 별로야.'

'잘하고 싶다, 더 잘할 수 있어.'

'더 열심히 해야 되는데...'


잘해보고 싶은 마음과 흥미를 잃은 머리는 좀처럼 거리를 좁힐 생각을 안 했고, 그렇다고 해서 그 간극을 흐린 눈으로 외면할 줄도 모른 채 혼자 고통받기를 1년, 마음이 고장 나니 몸도 따라 파업을 해버린 셈이다.

그래서 숨을 크게 들이쉬고, 다시 크게 내쉬고, 억지로 하는 것마저 잘 되지 않았지만 또 크게 들이쉬고, 내쉬고.


그렇게 한동안은 기필코, 절대로, 푹 쉬기만 할 거라고 다짐한 지 겨우 일주일을 채워갈 무렵이었다.

'그래서... 언제 가지...'

침대에 누운 채 3월부터 10월까지 괜히 화면의 스크롤만 만지작거리며 일찍 가면 뭐가 좋을 거고, 또 늦게 가면 뭘 더 준비할 수 있을지 '만약에'로 시작하는 온갖 가정과 이상적인 시나리오로 쉴 틈 없이, 또 어느샌가 머릿속을 가득 채워넣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헛웃음이 나왔다.


뭘, 언제, 어디서부터 어떻게 할 건지 무엇 하나 정해진 게 없는 막연하고 두루뭉술한 계획은, 불확실한 상황은 그저 불안감만 부풀릴 뿐, 계속 머리를 굴린다고 해서 어떤 뚜렷한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아... 그냥 표를 먼저 사버릴까?'


4월, 5월, 6월 가까운 시일의 항공편을 빠르게 훑으며 찾기 시작했다. 합리적인 비용에 너무 촉박하지도, 그렇다고 내가 너무 루즈해질 것 같지도 않은 그 날짜를.

환승하느라 너무 진빼긴 싫으니까 직항으로, 언제 올지 모르니까 편도로, 밴쿠버행, 106만 원... 5월 10일.


'너 사놓고 후회 안 할 거지?'

'... 안 사놓으면? 2달이고 3달이고 계속해서 이럴까 저럴까 안절부절할 거잖아?'


그러네, ...결제.


앞으로 남은 시간은 두 달.

이제 달려갈 곳은 정해졌다.



그다음 두 번째 달은 한 달 빼곡한 작별을 했다. 이민 가는 것도 아닌데 너무 요란 떠는 건 아닌지 좀 멋쩍기도 했지만 뭐 이런 핑계로 얼굴 보는 거니까. 그래서 괜히 "야, 이러고 두 달 뒤에 도망치듯 돌아올 수도 있어."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처음 만났을 적 20대 초중반이던 동생들은 '언니, 우리도 이제 이십 대 후반이야!' 하며 깔깔거렸다.

그러게,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을까? 너희도 만남이 뜸했던 시간만큼이나 더 멋있어졌구나. 자랑스러우면서도 마음 한 켠엔 불안감이 때를 틈타 고개를 살짝 내비친다.


'친구들은 꾸준히 한 길로 잘 가고 있네? 너는 뭐 하는 거야? 또 헤매는 거야? 언제까지 그러려고?'

'알겠으니까 지금은 좀 조용히 해.'


눈치 없이 튀어나온 바보 같은 불안감은 잠시 감춰두고 나는 진심을 담아 "와, 너무 잘됐다!" 하고 결혼을, 합격을, 성장을 축하한다.


이어서 돌아오는 애정 어린 응원과 한 자 한 자 마음을 눌러 담은 편지들에 불안감은 금세 사그라들고 대신 설렘이 그 자리에 머문다. 나와 보냈던 특별한 기억들, 그들이 사랑하는 나의 모습들, 그리고 더 멋진 훗날을 기약하는 메시지가 종이 가득 채워져 있다. 알 수 없는 용기가 다시 샘솟는다.

'그래, 내가 난데. 가서 뭐라도 하고 오겠지.'




그래서 다시 이 어두운 방 안으로 돌아와 이어가 보자면, 그러니까 나는 지금 왜 이 온갖 짐을 다 싸들고 캐나다로 떠나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글쎄, 솔직히 가는 이유와 목적이 분명하다고 떠들고 다닐 적에는 듣는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할 그럴듯한 명분을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던가.

지금쯤이면 내가 너무 무모해 보일 것 같으니 괜한 마음에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해 봐야겠다. 그렇지만 다 읽고도 납득이 안된다면 그땐 나도 진짜 어쩔 수 없는 거다. 왜냐하면 솔직히 나도 좀 그렇게 생각하거든.


내가 꿈꾸는 미래의 내 모습에 대해 고백해 보자면, 사실 별 건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한 직장에 오래 머물거나, 열심히 더 나은 곳으로 이직하며 경력을 착실히 쌓아온 그런 시니어 개발자는 옵션에 없었다. 노파심에 미리 얘기하면 그게 별로라는 말은 아니다. 그냥 나는 내 6개월 뒤, 1년 뒤, 3년 뒤가 예측되는 삶은 재미없다고, 내가 그리는 라이프스타일은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해 왔을 뿐이다. 나이가 좀 더 들면 반대로 또 그런 삶을 열망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때엔 이 글을 보고 웃을 수도, 지워버리고 싶을 수도 있으려나. '뭘 얼마나 그렇게 해보겠다고 아등바등 이었니?' 하고. 아니 사실은 그냥 '열심히 이것저것 살아보려고 애썼구나.' 하고 기특하게 생각해줬으면 한다.


사실 무엇보다도, 개발자로 일하는 게 썩 나쁘지는 않았지만 또 그렇다고 크게 즐겁지도 못했다. 물론 어떤 순간에는 잠깐의 성취감, 찰나의 짜릿함을 만끽하기도 했지만 길게 봤을 때 내가 여기에 깊게 몰두해 별 이유가 없을 때에도 스스로 공부하고, 업계 동향을 꾸준히 살피고, 새로운 기술을 끊임없이 시도해 보고 그런 정도의 열정은 없었던 것이다. 그저 책임감과, 상호 간의 신뢰와, 팀워크를 위해 그에 부응할 적당한 양의 공부를 했을 뿐, 결국 동력은 모두 외부에 있었고 내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혹은 어떤 때에는 있었으나 더 이상은 아니게 된 것일 수도 있고.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새로운 직무로 옮겨가기엔 마땅히 떠오르는 게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개발 일이 아주 안 맞는 건 또 아니었으니까, 그럼 단순히 회사나 도메인을 바꾸는 데서 그치지 말고 나라를, 환경을 바꿔보면 또 뭔가 다르지 않을까 싶었던 거다. 나에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다, ‘잘 그만뒀어.’라고 말하기 전까지.


그렇게 퇴사를 하고 쉬고, 돌아보고, 생각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던 중 어느 하루 스치는 생각. '가서 또 회사에 취직하고 매일같이 출근하고, 그러면 결국 크게 다를 게 뭐람? 이왕 가는 거 지금 이때,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자. 보기에 그럴듯하지 않아도 되고 지금껏 내 삶과 전혀 연관 없던 일이면 더 좋고, 뭐가 됐든 기회가 닿는 대로 다 해보는 거야.'


마치 게임 심즈에서 (00년대생에겐 동물의 숲이 더 익숙할 지도.) 새로운 동네에 덩그러니 떨어진 게임 캐릭터처럼, 낯선 맵에서 나는 어떤 성격에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아갈지, 아직 아무런 흔적도 없는 그곳에 내가 그려내는 그림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평생의 기억과 시간이 얽혀있는 한국과는 분명하게 독립된 그곳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나는 어떤 사람일까?


'그래, 평생에 딱 한 번, 딱 1년만, 내 삶을 가지고 실험해 보는 거야.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데로.
바닥에 그어진 트랙만 바라보고 평생을 달리기엔 너무 아쉽잖아, 이 한 번뿐인 인생이.'


그리고 나는 그런 결정을 한 과거의 나를 애정하고 또 미워하며, 이 방 안에서 혼자 갑작스레 몰려온 두려움을 삼킨 채 머리를 싸매고 누워있는 것이다.


‘와... 진짜 가는구나.'

'이제 물러설 곳도 없어, 어차피 할 거면 닥치고 그냥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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