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선생님의 말랑말랑 비법
지희는 담임 선생님을 좋아한다.
선생님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손에 꼽자면 우선 예쁜 외모.
긴 머리에 약간의 웨이브
단정하지만 포인트있는 자켓과 스커트
수업을 하다 화장이 약간 지워지면서
까무잡잡하면서도 약간의 주근깨가 보이는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피부결이 돋보인다.
단 번에 들어오는 미인은 아니지만
큰 눈과 단호해보이지만 지혜로움이 묻어나는 눈빛
몇 분 안에 지적인 면을 보이는 말투
그게 담임 선생님, 홍선생님의
자연스러운매력이었다.
선생님의 담당 과목은 <가정>
<가정>을 학교에서 배운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지만 음식의 조리 과정을 외운다거나 영양소를 외운다는 건 재미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고약한 일을 선생님의 방식으로 해냈다.
‘초롱초롱 싸리 잎에 은구슬..’의 가사로
시작하는 동요에 영양소와 영양소가 결핍되면 발생하는 질병의 이름을 그 노래에 부르게 했다.
“A 야맹증, 티아민 각기병, 리보 설염, C 괴혈병
D 구루병, 철분 빈혈, Na 신장병, 칼슘 구루병“
교과서에 나와있을 때는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던 그 각각의 정보들이 동요의 음정에 영양소의 이름을 붙이니 자연스럽게 외워졌다. 동요의 멜로디를 이용하니 머리에 새겨지는 것 같이 외워졌고 아이들 대부분 가정 시험 점수는 거의 만점에 가까웠다.
외우는 것에 젬병인 지희도 친구 미영이도
가정 시간에 배운 내용 만큼은 줄줄 외웠다.
선생님이 수학 선생님이나 영어선생님이었다면 반 친구들은 모두 수학 귀신, 영어박사가 될 일이었다.
선생님의 특별한 점은 또 있었다.
선생님은 교실에 학급 문고를 만들었다.
자기가 서점에서 직접 책을 사다 채우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기 시작했다.
국어선생님 덕분에 문학소녀가 되었던 아이들이 학급 문고 덕에 자연스럽게 책벌레가 되었다.
“너 퇴마록 몇 권 읽었어?” 가
아이들의 안부를 묻는 흔한 질문이던 그 때
<퇴마록> 덕분에 판타지 세계에 빠져들었던 사춘기 소녀들의 상상의 세계를 더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책은 장편소설<개미>였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고 있는 선생님의 책을 보고 아이들 한 두명이 읽기 시작하더니 학급 문고에서 <퇴마록>을 제친 <개미>가 대출 1순위.
학급문고에서 빌릴 수 없는 <개미>를 집에서 사와서 아이들에게 빌려주는 친구는 아이들에게 인기 1순위
<개미>의 첫 부분에서 나온 성냥 수수께끼는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알 수 없는 암호 같은 말들과 퀴즈를 푸는 것 같은 추리소설과 판타지의 어딘가에 위치한 특별한 책이었다.
<개미>를 통해 장편 소설에 입문한 지희는 이제 웬만한 두꺼운 소설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지희 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들에게 책의 분량은 책을 읽어내는 데 어려움이 되지는 않았다.
학급 문고에는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있었다. 짧은 생을 살다간 여류 작가의 인생을 다룬 이 작품은 아이들에게 고독의 아름다움과 유학 생활에 대한 동경을 품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책만 읽히는 건 아니었다.
선생님은 가요를 좋아하는 취향을 밝혔다. 매주 금요일마다 반 아이들에게 칠판 가득 가요를 적게 했다. 선생님은 가수 015B를 무척 좋아했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가요를 아이들과 같이 큰 소리로 부르는 것은 진풍경이었다. 늘 똑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는 선생님도 금요일만큼은 자기가 중학생인 것처럼 불렀다. 합창대회를 준비하던 때를 빼고 지희네 반 친구들은 거의 015B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지희는 <수필과 자동차>라는 가사를 좋아했는데 소소한 데 낭만적인 가사가 지희의 마음에 쏙 들었다. 선생님과의 마지막 수업에서 < 이젠 안녕>을 부르는 건 당연한 일.
학교에서는 늘 스커트 정장을 입고 다니는 선생님이
주말에는 흰 티와 청바지와 스니커즈를 신고 거리를 누비며 노래를 들으며 친구들과 즐겁게 다니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런 선생님의 모습이 그렇듯 우리들도 자유로운 미래를 그릴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공부와 삶의 자세를 가르치는 담임 선생님이 있다는 건 흔들리는 가정에서 살고 있는 지희와 같은 반 친구들에게 어른으로서의 자세와 품위를 배우는 좋은 기회였다. 좋아하는 가요를 듣고 노래를 아이들과 같이 부르는 감정이 말랑말랑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모습도 자연스러워서, 지희는 그런 선생님이 좋았다.
https://youtu.be/IJ-KVTeSOkk?si=cYLAzUR4Y4U7Od4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