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교회와의 이별
정말로 내가 나같고 솔직할 수 있는 곳
조금이라도 내 의라 말할 수 없는 이 곳
이 곳은 바로 주님의 세계라
홍이삭( 하나님의 세계 중)
지희는 며칠 전 친구 성희를 따라서 큰 교회에 갔다. 엄마와 교회에 간다 안간다 싸우다가 결국 교회에 안 가는 지희를 말릴 수 없어서 지희엄마는 알아도 모르는 척 했다.
“ 몇 번 가보다가 말아. 큰 교회가 다른 줄 알아?”
그 교회는 달랐다. 교회가 커서가 아니었다.
그 교회에서는 지희는 더이상 시장 속 아이 지희가 아니었다. 김집사, 박집사의 딸이 아니었다. 그저 다른 비슷비슷해보이는 여러 명의 중학생들 중 한 명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지희는 편했다.
조용하고 착하지만 사람들에게 위축되는 아빠와 부끄러움이 많은 불안한 기질의 엄마 시장 속 자신의 집에 교회 친구들을 데려올 수 없는 지희의 서사가 지희가 교회를 피하게 되는 결정적이유였다. 서로의 집에 가서 어른들이 예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어울리는 아이들과는 달리 지희네 집은 친구들이 깨끗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으니 지희는 친구를 데려올 수도 없었다. 머릿고기가 즐비한 그 골목을 지나 집으로 아이들을 데려올 수는 없었다.
어느 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데 무대 위 찬양 인도자는 즐거운 찬양을 인도하고 있었다.
“싱글싱글 벙글벙글 우리모두 고개돌려, 샥.”
“ 우리 함께 기뻐해, 높이 찬양 돌리세”
서로들 얼굴을 마주 보고 하이 파이브를 하며 눈을 마주치는 찬양. 누구하고도 눈을 맞추는 것도 힘들고 하이파이브 박수를 편안하게 칠 사람도 없는 지희. 지희 한 명만 빼놓고 다들 행복해보이는 분위기
지희 마음에서 소리가 났다.
‘기뻐하라는 데 기쁘지가 않아. 하나도 안 기쁜데‘
그 때부터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교회에 가도 하나도 안 기쁜 건.
어릴 적 엄마가 갑작스럽게 교회를 옮겨야한다는 말을 하기 전까지 지희는 동생 윤희와 함께 작은 동네 개척 교회에 다녔다.
시장 골목 끝, 컴퓨터 세탁소 옆 과일 가게 2층에는
방주교회라는 간판을 단 교회가 있었다.
방주교회는 온 동네 아이들이 바글바글했다.
시장에 있는 아이들이란 아이들은 다 있는 곳. 거기서 동네 아이들과 장난치며 예배를 드릴 때는 즐거웠다. 재미가 있었다.
일요일 오전 만화를 다 보고 할 일이 없는 아이들끼리 서로 골목에서 놀다가 싸우다가도 예배 시간이 되면 다들 방주교회로 달려갔다.
흙아이들이 손을 잡고 어깨 동무를 하고 달려갔다. 좋은 옷을 입을 필요도 없이 학교에서처럼 새침한 아이인 듯 이리저리 아이들을 잴 필요가 없었다.
늘 시장 아이인 그대로 갔다가 웃고 떠들고 이야기하고 실컷 교회 노래부르고 오면 되는 곳, 아이 한 명 한 명을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어른들이 있는 곳
방주교회를 다닐 때는 지희를 포함한 시장골목 아이들에게 교회는 신나는 곳, 해방구 같은 곳이었다.
할 일이 딱히 없는 아이들을 돌보아주는 보호해주는 말그대로의 방주 (큰 배)역할을 했다.
지희가 4학년이 되는 어느 날.
엄마는 온 가족이 같은 교회를 다녀야한다며 지희와 윤희에게 자기가 다니는 교회로 옮겨야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싫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게다가 큰고모까지 합세해서 가족이 복을 받으려면 다같이 같은 교회를 섬겨야한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봉사를 하고 윤성이를 챙기면 힘들어서 따로 다니는 것이 어려웠지 4학년이면 동생들데리고 길을 건너서 예배를 갈 수 있다는 게 엄마의 지론이었다.
지희와 윤희가 교회에 나오질 않자 개척교회 사모님이 미용실에 왔다.
“집사님, 지희랑 윤희랑 교회에 안 와서 와서요.”
방주교회 사모님이 미용실에 와서 너무나 반가웠고 지희와 윤희를 중요하게 생각해준 게 고마웠다. 사모님이 엄마를 설득해주길 바랬지만 엄마는 완고했다.
“가족끼리 다같이 다녀야해서요. 애들끼리만 보내는 게 마음이 걸려서요.”
연신 손님 머리를 만지며 사모님쪽은 쳐다도 안보는 엄마. 사모님의 설득은 소용이 없었다.
늘 미용실 손님들에게 친절해야만 하는 엄마가 찾아오는 손님에게 불친절하게 대하는 몇 안되는 장면. 그 장면에서는 지희 엄마가 힘의 균형에서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결정이 아이에게 어떤 파장을 일으킬 지는 엄마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다같이 같은 교회를 다니면 보기 좋을 거라는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매주 일요일 아침, 지희는 눈을 뜨고 신나게 교회로 뛰어가던 그 매일 아침을 빼앗겼다.
가지런한 옷을 입고 헌금을 잘 가지고 예배를 드리러 동생들과 찻길을 건너 한참을 걸어 교회에 갔다.
“네가 김집사님 큰 딸이구나.”
엄마 아빠 구역예배 때 본 어른들도 꽤 되었지만 결국 지희와 윤희 뿐. 낯선 곳에 떨어진 것 같은 느낌.
인사를 해야할 지 말아야 할 지. 무엇부터 해야할 지 모르는 데 자세히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다. 다른 아이들은 아동부 예배가 끝나고 서로들 봉사하는 부모들을 기다리느라고 각자의 집에 가서 놀았다. 서로들 집에 가는데 지희는 데려올 수가 없었다.
“너네 집 미용실한다며, 너네 집에 가서 놀면 안 돼?”라고 아이들이 물었다.
지희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한다는 걸 알면 아이들이 지희를 어떻게 생각할까 생각만해도 괴로운 일이었다.
엄마 말대로 가족이 다같이 교회에 다녀서 복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즐겁게 교회를 다닐 기회를 뺏긴 지희로서는 자유를 빼앗긴 게 다름없었다.
시장 골목 위로 친구들을 서로 부르며 작은 교회로 들어가는 친구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지희는 윤희와 함께 엄마가 다니는 교회로 갔다.
아동부 시기를 지나 청소년기를 지나니까 더 힘들어졌다. 교회 아이들과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던 지희가 청소년이 되었다고 더 친해질리가 없었다.
그곳에서야말로 지희는 무채색
같은 반 성희가 갑자기
“너 교회 다녀?” 했을 때
“나, 교회 다니긴 해.” 머뭇거리며 말했다.
“ 너 우리교회 다닐래?”
했을 때 선뜻 용기가 어디서났는지
“갈래.” 해버렸다.
큰 교회라서 다르다는 생각은 안 했다. 기대없이 간 그 교회에서는 마음이 편했다.
지희 또래의 중학생들 속에서 지희의 모습 그대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지희는 마음에 들었다. 중학생들이 청소년 예배가 끝나고 공과공부라는 것을 하는데 교회 옆 레스토랑에 갔다. 지희로서는 잘 가보지 못하는 경양식 식당에서 지희의 생각을 물어보는 편안한 자리.
지희가 아빠한테 물어보면 늘 돌아오는 대답은
“알 거 없어. 다 알게 돼.“
큰 고모는 무서워서 , 엄마는 늘 바빠서 물어볼 수 없던 질문들과 돌아오지 않는 대답들
어린이였을 때도 이제 막 중학생으로서도 어른들이 귀기울여 준 일은 없었는데 여기 교회에서는 선생님이 지희의 말을 중요한 말이라도 되는 냥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여러 명 중의 한 명의 지희임에도 지희가 지희로서 존중받는 역설, 너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고개를 흔들며 들어주는 교회선생님의 그 몸짓이 얼음같이 꽁꽁 얼어있던 지희의 어른에 대한 오해들을 조금씩 풀게 해주었다.
다수 속의 한 명이라도 그래도 따뜻함을 느끼는 역설.
그래서 지희는 교회를 옮겼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지희는 자기가 스스로 교회를 옮긴 줄 알았지만 보이지 않는 큰 손이 자신을 이끌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큰 손은 아주 어린 지희를 개척 교회라는 작은 배에서 보호했던 보이지 않는 큰 손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